#1 기도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백두산 암반수(巖盤水)
카테고리 없음 / / 2025. 4. 13. 12:25

기도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도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은 소원을 이루거나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사람마다 다양한 욕망이 있다. 학업, 사업, 가정의 화합, 마음의 평화, 건강 등. 그리고 각자의 방법을 선택하고 그러한 욕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때로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가정하고 그 절대적인 존재의 은총에 의지하기도 하고, 무당에게 떡을 만들어 절을 올리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이나 소원을 이루기 위한 행동을 '기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불교 신자들은 '부처님, 저를 도와주세요. 저를 돌봐주세요.'라고 기도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교 기도가 아다. '기도'라는 단어는 '빌 기(祈)'와 '빌 도(禱)'의 합성어이지만, 불교 신자들의 기도(祈禱)는 그렇지 않다. 불교에서 기도는 법성(法性)의 진리의 힘을 활용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 삶에 넘쳐흐르는 부처의 진리와 빛을 항상 마음에 새기는 행위가 기도다.

 

 불교 기도는

 ‘부처님의 무한한 위신력이 내 삶으로 넘쳐흐르고, 그것이 지금 내 현실이다’

 

 라는 사실을 깊이 믿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서 기도는 부처의 무한한 위신력이 나와 함께하고 나를 통해 넘쳐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불교 기도는 자아라는 관념을 버리고, 부처의 큰 자비를 믿고, 모든 것을 부처께 온전히 맡기고, 한마음으로 염불하고 외우는 것이다. 자신의 삶 위로 넘쳐흐르는 부처의 무한한 공덕, 모든 이웃과 온 세상을 채우는 부처의 자비, 자신의 삶의 구석구석에 넘쳐흐르는 부처의 지혜와 위신력을 생각이나 마음이 아닌 온몸으로 보는 기도다.

 

 두 종류의 기도

 기도라는 단어는 ‘빌다, 구걸하다’라는 뜻이지만, 같은 기도라는 단어를 쓴다고 해도 창조주나 절대적 존재를 세우고 그 절대적 존재에게 기도하는 종교의 기도 형태는 절대적 존재가 없는 불교의 입장과는 다르다. 불교 기도는 부처님께서 이미 주신 온전한 진리가 내 삶과 몸과 마음에 드러나도록 하는 형태이므로 기도는 수행이다.

 

 어떤 사람들은 ‘불교는 깨달음에 관한 것인데, 어떻게 기도가 수행이 될 수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교 기도는 부처님께서 우리가 원하기도 전에 이미 온전한 것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부처님께서 주신 은총의 밝은 햇살을 부지런히 받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이유로 기도 수행은 참된 삶의 실현이며, 부처님의 무량한 공덕과 하나 되는 길, 즉 영원한 참된 나의 삶으로 가는 길이다. 다시 말해, 기도는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 무량한 공덕, 그리고 축복으로 향하는 문을 여는 창조적인 행위다.

 바른 믿음과 바른 기도를 통해 만물은 반드시 변화하고 기도는 성취될 것이다. 이는 결코 부처님께서 제시하신 논리가 아니다. 인간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허구도 아니다. 이는 반야의 큰 지혜가 밝혀낸 인간과 우주, 그리고 법성의 본모습이다. 모든 생명의 근본 모습이므로 법성, 본모습이라고 한다.

 

 이 본모습을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관찰하고 그 실현을 추구하는 사람이 불교에서 기도하는 사람이다.

 

부처님의 무량공덕 가피

  불교의 기도 원리와 가피(加被)

 불교에서 기도는 완전한 삶으로 이끄는 삶의 리듬이며, 삶 속에 담긴 부처님의 자유, 평화, 기쁨, 지혜, 자비, 그리고 무한한 공덕을 바르게 사용하여 부처님께서 주신 모든 공덕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의 기술(생명의 기술)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기도의 기술이란 무엇일까?

 

 첫째, 큰 믿음에서 시작된다. 믿음의 성품(信一字)이 바르면 온갖 행위가 일어나고 지혜가 실현되어 깨달음이라는 궁극적 진리를 성취하고 부처가 된다.

 “모든 것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一切唯心造)”

 

 라는 구절은 화엄경의 핵심 사상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나타나 자신의 상황과 환경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음이 행복을 만든다”라는 구절은 마치 행복인 것처럼 마음을 바꾸어 불행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음을 바꾸면 환경이 바뀌고, 행복한 마음이 행복을 만든다는 뜻이다.

 

 온전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마음을 바꾸고 마음을 사용함으로써 청정한 부처님께서 주신 본래의 진리와 청정함을 드러내고, 그 진리와 청정함을 우리의 현실 생활에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범부(凡夫)의 땅 위에 부처의 땅, 성인의 땅을 창조하고,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부처의 땅으로 변화시키는 것 또한 이와 같이 변화하는 것이다.

 

 이를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의 작용일 뿐',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의 나타남일 뿐'이라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마음(心)이 무엇이냐는 의문이 생긴다. 이에 대해 반야심경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 모든 법은 허상이며, 생멸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으며, 청정하지도 않고 늘지도 않습니다(是諸法空相不生不滅不垢不淨不增不減)

 

 이는 만물의 본성은 공(空)이며, 그 본성은 영원하고 청정하며 완전(圓滿具足=모든 것을 갖추고 부족함이 없음)함을 설명한다. 그러나 반야불교는 마음을 공(空)으로 표현하는 반면, 식불교는 마음을 의식(意識)으로 다르게 부른다.

 마음(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 물질적인 현상을 드러낸다. 따라서 기도는 반야심경과 화엄경의 가르침을 믿고 자신의 마음(의식)에 집중하여 현실 속에서 깨닫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부처님의 가피’라는 말이 현실 속에서 나타난다. 이 가피력에는 눈에 보이는 가피(顯熏加被)와 눈에 보이지 않는 가피(冥熏加被)가 포함된다.

 

 눈에 보이는 보호는 우리가 즉각적인 성공이나 즉각적인 성취를 경험할 때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보호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찾아오는 평화와 기쁨을 받을 때이다. 부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기쁨과 성취를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모든 인간은 내면에 진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들은 무한한 지혜와 덕, 그리고 창조력을 가지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무한한 창조력을 가진 존재로서, 진리로서 우리 자신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 진리가 부처님의 것이며, '불성이 곧 부처'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우리 본성 안에 부처와 같은 삶을 가지고 있다. 나, 당신, 그리고 만물이 부처라는 혁명적인 선언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이라는 말씀이다. 문제는 이 사실을 확실하게 믿기 위해서는 공과 의식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공과 의식을 보기 위해 수행해야 하며,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삶은 더 수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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