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감정을 느낌 수(受)라 부른다
감정은 개념적인 명료한 인식 이전에 또는 인식과 무관하게 우리가 내적으로 느끼는 주관적 마음 상태를 말한다. 불교는 이러한 감정을 느낌 수(受)라고 부르는데, 수는 인간을 구성하는 5 온의 하나이다. 물리적 색(色)이 아닌 심리적 명(名)을 이루는 수•상•행•식 중 첫 번째 구성물이다. 느낌 수가 있고 나서 개념적 인식 작용인 지각 상(想)이 일어나고 이어 업을 짓는 의지 작용인 행(行)이 있게 된다.
그리고 수•상•행의 심리 작용을 총괄하는 앎인 식(識)이 성립한다.

불교의 12지 연기에 따르면 느낌 수는 그다음의 능동적 업(業)인 애(愛)와 취(取)를 일으키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 업의 과보로 미래 업을 일으키는 인연이 된다는 점에서, 느낌은 연속으로서의 윤회적 삶을 성립시키는 중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12 연기 : 무명 → 행 → 식 → 명색 → 육입처 → 촉 → 수 → 애 → 취 → 유 → 생 → 노사
업 ∥ 과거로부터의 업보 ∥ 미래를 이끄는 업 ∥ 보
느낌이 지난 업의 과보라는 것은 과거의 결과로써 그냥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현재적 선택이나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느낌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게 밀려오는 것이며, 나는 그렇게 밀려오는 느낌을 그저 수용할 뿐이다. 있는 느낌을 억지로 없게 하거나 없는 느낌을 인위적으로 있게 만들 수가 없다.
느낌이 의식적 판단이나 의지적 결단과 무관하게 내게 밀려온다는 것은 그 느낌의 시작과 끝이 내게 가려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만큼 그 안에 나와 세계의 존재에 대해 의식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식으로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나와 타인과의 관계 또는 나와 세계와의 관계를 느낌을 통해 직감하기도 한다.
불교가 논하는 만물의 연기적 상호 의존 관계는 의식의 개념적 사려분별 이전에 느낌으로 다가오며 느낌으로 포착되는 것이다.
느낌은 알아차림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느낌을 수동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해서 무방비 상태로 받아들이며 좌지우지되거나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아니다. 느낌은 알아차림이 중요하다. 느낌을 알아차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삶의 태도와 방향을 결정짓는다. 즉 범부로 머무르는가 수행자가 되는가를 결정짓는다.
붓다가 강조한 사념처관(四念處觀)에 느낌을 관하는 수념처관(受念處觀)이 속한 것이 이 때문이다. 사념처관은 네 가지 염처, 즉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을 관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념처관과 심념처관 사이에 행하는 수념처관이 바로 느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수행이다.

부정 정서(느낌)에 대처하는 두 가지 유형
저명한 심리학자인 아널드 라자루스(Arnold Lazarus)는 사람들이 부정 정서에 대처하는 다양한 방식을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 바 있다. 그 하나는 '문제 초점적 대처'로서 부정 정서를 유발한 사건의 원인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변화시키는 현실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해 실행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예컨대 직장에서 계속되는 업무 부진으로 좌절감을 경험하는 경우에는 자신의 업무 방식을 자세히 분석해 좀 더 효율적으로 변화시키거나 상사와 상의해 감당할 수 없는 업무를 조정하는 것이다. 부부 관계의 갈등으로 고통스러운 경우에는 갈등의 원인을 찾아내어 변화시키거나 상담을 통해 근본적인 해결을 시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서 초점적 대처'로서 부정 정서 자체를 감소시키는 다양한 노력을 뜻한다. 예컨대 다른 일(음식, 술, 담배, 쇼핑, 영화 등)에 주의를 돌림으로써 부정 정서를 완화하는 주의 방법, 가까운 사람에게 부정 정서를 호소하며 표출하는 정서적 발산 방법이 있다. 그리고 사건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해 부정 정서를 감소하는 인지 재구성 방법, 기도나 기원을 통해서 문제 상황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거나 상상하는 소명적 사고 방법 등이 있다.
사람마다 부정 정서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 또한 문제 상황에 따라 대처 방식의 효과도 다르다. 예컨대 반복되는 부정 정서에는 '문제 초점적 대처'가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정서 초점적 대처'가 바람직할 수 있다.
부정 정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는 심리 상담자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심리학자들은 개인의 특수한 성격과 상황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서장애를 완화하는 다양한 심리 치료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불교의 계정혜 삼학으로 부정 정서 다스리기
종교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인간이 경험하는 고통을 위로하고 부정 정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신(神)이나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앙을 통해 고통에 대처하도록 돕는 종교도 있고, 고통이 생겨나는 근원적 원인을 깨달아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사유 방식을 변화시키도록 돕는 종교도 있다.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추구하는 불교에서는 부정 정서를 다스리기 위한 다양한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계정혜 삼학(戒定慧 三學)은 부정 정서에 대처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잘 제시하고 있다. 삼학의 첫째인 계행(戒行)은 행동에 초점을 맞춘 수행이다. 불행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고통 속으로 몰아가는 부정적인 행동과 습관에 젖어 있는 경우가 많다.
비판적이고 공격적인 말을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그리고 불안정하고 무절제한 행동 패턴을 통해 좌절과 실패를 초래한다. 수행의 첫 단계는 부정 정서를 촉발하는 부정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대신 긍정적인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삼학의 둘째인 정행(定行)은 산란한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히는 수행이다. 불행한 사람들은 불안, 분노, 우울과 같은 부정 정서를 자주 강하게 느낄 뿐만 아니라 마음이 늘 복잡하고 불안정하다. 계행을 통해 부정 정서를 유발하는 사건을 만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행을 통해 불안정한 감정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산란한 마음을 안정시키는 정행의 대표적인 방법은 명상이다. 108배, 염불, 사경과 같이 하나의 활동에 집중하는 수행은 고통스럽고 산란한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좋은 방법이다.
삼학의 셋째인 혜행(慧行)은 생각을 변화시키는 수행이다. 자신의 마음을 세세밀밀하게 관찰해 부정 정서를 유발하는 잘못된 생각, 즉 망념(妄念)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부정 정서를 비롯해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경험이 인연의 화합으로 생겼다 사라지는 공(空) 한 것임을 인식하게 되면 그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삼법인(三法印)을 마음 깊이 새기면 어떠한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계정혜 삼학은 행동, 정서, 인지의 변화를 통해 부정 정서를 다스리는 마음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계행을 통해 삶을 청정하게 만들고, 정행을 통해 정서를 고요하게 안정시키며, 혜행을 통해 망념에서 벗어나 지혜를 얻는다. 계행, 정행, 혜행은 서로를 촉진하는 효과를 지닌다.
행동이 청정해지면, 불필요한 갈등과 부정 정서에 휩쓸리지 않아 마음이 고요해진다. 정서가 안정되면, 마음이 좀 더 밝아져서 지혜가 생겨난다. 지혜를 통해 인과의 연기를 보게 되면 저절로 악행이 줄어들고 선행을 하게 된다. 심리학의 관점에서도 삼학 수행은 삶에서 겪는 모든 괴로움, 즉 부정 정서를 다스리는 매우 탁월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