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 부처님, 수기(受記)를 주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류의 스승이시다. 부처님의 삶을 말하려면 아주 오래전 구도자(보살)로서 살았다. 수없이 윤회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전생의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평범한 사람으로 살았다. 처음 부처 되는 길을 구한 이래로 나고 죽기를 반복하였다. 탐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괴로움을 겪는 세상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을 괴로움에서 구제하려면 무엇보다 스스로 먼저 탐욕과 어리석음의 길에서 뛰어나와야 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보살로 태어나는 세상에서마다 부지런히 수행하였다. 수행하면서도 괴롭거나 힘들다고 여기지 않았고, 마음을 비워 고요함을 즐기며 욕심을 내지 않았다. 자기 것을 덜어서 보시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계율을 지키며 겸손하여 자신을 낮추었다. 그리고 모욕을 받더라도 참아내면서 용감하게 정진하였다. 지혜를 닦고 익히며 세상의 모든 생명들을 사랑하였다. 가난한 이를 가엾게 여기고 슬픔에 잠긴 이를 위로하며 중생을 보듬었다. 부처님과 성자들을 만나면 지극한 마음으로 받들어 섬기면서 가르침을 받고 수행하였다. 이렇게 쌓은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연등 부처님이 세상에 나셔서 가르침을 베풀던 때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때 석가모니 부처님은 선혜善慧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 구도자였다. 연등 부처님이 수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세상을 다니며 중생을 교화하셨다. 연등 부처님은 한 나라에 이르셨다.구도자 선혜는 마침 산과 숲에 살았다. 그는 고요히 선정을 닦고 세상의 지혜를 널리 구하며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선혜가 도시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길을 쓸고 물을 뿌리고 향을 피우는 등 여념이 없었다. 그가 까닭을 묻자 사람들이 대답하였다.
"연등 부처님이 오늘 오십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올릴 공양을 준비하느라 이렇게 분주합니다."
부처님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선혜의 마음에는 커다란 기쁨이 차올랐다. 그토록 찾아다니던 스승을 이제야 만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선혜는 간절히 바라던 부처님을 친견하는 자리에 정성스러운 공양을 올리고자 했다. 하지만 왕이 도시의 모든 공양물을 자신이 올리려고 거두었다. 그래서 선혜는 간신히 구리 여인에게서 꽃 일곱 송이를 마련할 수 있었다.
마침내 연등 부처님이 도시로 들어오셨다.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어 연등 부처님을 겹겹으로 에워싸고 말았다. 구도자 선혜는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꽃을 올릴 수가 없었다. 선혜의 안타까운 마음을 본 연등 부처님이 땅을 진창으로 만들었다. 발이 더럽혀질까 염려한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섰다. 비로소 선혜가 부처님 앞에 나아가서 다섯 송이 꽃을 흩뿌렸다. 그러자 꽃은 공중에 머물러 세상을 다 덮을 정도로 크고 아름다운 꽃일산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연등 부처님 머리 위에서 활짝 펼쳐졌다. 이어서 남은 두 송이 꽃을 흩뿌리자 꽃은 부처님 두 어깨에 아름답게 자리하였다.
꽃을 올린 뒤 선혜는 머리를 풀어 진창을 덮고서
"부처님께서는 제 머리카락을 밟고 지나가소서"라고 청하였다.
연등 부처님이
"어찌 그대의 머리카락을 밟을 수 있겠는가"
라며 사양하자 선혜는 말했다.
"부처님만이 밟으실 수 있습니다."
연등 부처님이 구도자 선혜의 머리카락을 밟고 서서 웃으셨다. 그러니 입안에서 오색 광명이 나와 세상을 환히 비추었다. 이 광명이 칠흑같이 어두운 지옥까지 비추자 지옥의 중생들이 모두 괴로움을 벗어나 편안해졌다.
제자들이 여쭈었다.
"부처님은 헛되이 웃지 않으십니다. 지금 그 미소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
연등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이 구도자를 보는가? 이 사람은 수없는 세월 동안 맑고 깨끗한 법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그 마음을 잘 다스렸고 욕심을 버리고 진리를 지켰다. 세상을 향해 치우치지 않는 사랑을 베풀면서 공덕을 쌓았다. 서원을 품었는데 이제야 그 바람을 이루게 되었다."
연등 부처님은 다시 선혜를 바라보시고는
"그대는 지금으로부터 백 겁 후에 부처님이 되리니 명호는 석가모니라 하리라. 오탁악세 사바세계 중생을 교화하고 그들을 해탈케 하리니 지금의 나와 같으리라"
라고 수기를 주셨다.
장차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은 선혜보살은 커다란 기쁨이 차올랐다. 부처님과 가르침에 대한 의심이 풀리고 욕망이 그쳤다. 그리고 고요히 선정에 드는 순간 생멸을 뛰어넘은 지혜를 얻었다. 그는 연등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렸다.
이후 선혜보살은 사바세계에 태어나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실 때까지 수없이 나고 죽기를 반복하였다. 태어나는 곳마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는 구도자의 삶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래로는 중생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베풀어 그들을 괴로움에서 구제하는 보살의 길을 걸었다.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동물로 태어나기도 하였다. 그 모든 생애에서 다른 이를 구제하고 어리석은 자를 일깨우며 자신을 희생하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