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전생 이야기>
보살이 모든 선업과 보살행을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다.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기 위해 보살은 자신을 끝없이 희생하면서도 진리의 가르침을 찾아 길을 나선다. 여느 사람들에게는 그저 귓가를 스치는 소리에 지나지 않더라도 깨달음을 찾아 나선 보살은 그것이 진리의 말씀인 줄 알아차린다. 그만큼 서원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보살은 어느 전생에서는 히말라야산에서 수행하는 자로 살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 진리의 말씀 한 구절을 얻기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는데, 그 전생 이야기를 살펴보자.
히말라야산에 홀로 살면서 수행으로 온종일을 보내는 구도자로 태어난 보살은 일찍이 부처님이 세상에 나셨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고 부처님의 가르침도 듣지 못했다. 홀로 용맹정진하는 가운데 어디선가 누군가가 자신에게 진실한 가르침을 들려주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 구도자의 간절하고도 진지한 모습을 보고 천상의 제석천과 신들이 감탄하여 말하였다.
"천상의 신과 인간 세상 모든 사람들은 번뇌라는 독기에 시달리고 있다. 만일 세상에 부처라는 나무가 있다면, 모든 중생이 그 나무의 서늘한 그늘 아래로 모여들 것이다. 그러면 온갖 번뇌의 독기가 사라지리라. 저 구도자가 다음 세상에 부처가 된다면 천상의 신인 우리도 뜨거운 번뇌를 없앨 수 있을 텐데 과연 그렇게 될까? 중생이란 티끌 같은 이유만으로도 마음이 흔들리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제아무리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음을 내더라도 끝내 이루는 자들은 흔치 않다. 지금 이 사람이 비록 용맹정진하고 있지만 과연 그 발심이 진실하고 흔들리지 않는지 시험해봐야겠다."
제석천은 곧 흉악한 나찰귀羅刹鬼의 모습으로 변해 히말라야산 근처로 내려가서 맑은 음성으로 이렇게 게송을 읊었다.
모든 것은 무상하니
이것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법이다.
홀로 정진하던 수행자는 나찰의 노래를 듣는 순간 귀가 번쩍 뜨였고 말할 수 없는 기쁨에 차올랐다. 바다에 빠진 이가 배를 만난 듯, 목마른 이가 시원한 샘물을 만난 듯, 오래 갇혀 있던 이가 자유를 얻은 듯, 길 떠났던 이가 집에 돌아와 가족들이 기쁘게 맞이하는 듯 한없는 기쁨이 샘솟아난 수행자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누굴까? 누가 이런 게송을 읊었을까?'
하지만 보이는 것은 흉악하고 음산한 기색의 나찰뿐이었다.
"당신이 이 게송을 말하였소? 이런 가르침은 외도의 스승들 아래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것이오."
그러자 나찰귀가 말했다.
"내게 이 뜻을 묻지는 마시오. 난 지금 여러 날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 터라 제정신이 아니어서 헛소리를 한 것일 뿐이오. 아, 내게 힘이 있다면 허공을 날아서 저 높은 천상에 올라가 먹을 것을 구하련만 그렇게도 할 수 없어 이런 말이나 중얼거렸을 뿐이오."
보살은 다급하게 말했다.
"그대의 게송을 들으니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소. 하지만 뒷 구절이 있을 터인데 어서 마저 들려주시오. 그 게송 뒷부분을 마저 일러주면 나는 일생 동안 그대의 제자가 되겠소."
나찰귀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자기 생각만 하지 말고 내 사정도 헤아려주시오. 나는 정말 배가 고파서 게송 뒷부분을 말할 힘이 없단 말이오."
그러자 수행자가 물었다.
"그대는 무얼 먹으며 살아가고 있소?"
"나는 사람의 더운 살을 먹고 사람의 뜨거운 피를 마시오. 복이 없으니 이런 것만 먹고 살 수밖에요."
"그대가 그 게송 뒷부분을 마저 말해준다면 나는 그 게송을 듣고 나서 이 몸을 당신에게 공양 올리겠소. 나는 지금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이 부서지기 쉬운 몸을 버리고 견고한 몸으로 바꾸려 하오. 그러니 게송 뒷부분을 들려주시오."
나찰귀가 말했다.
"그렇다면 뒷부분을 들려주겠소. 잘 들으시오."
일어나고 사라짐이 소멸하면
열반의 즐거움이다.
나찰이 마저 들려주자 보살은 게송의 뜻을 깊이 마음에 새기고, 사방의 벽과 나무와 길에 이 게송을 써놓았다. 그런 뒤에 약속대로 나찰에게 제 몸을 주기 위해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높은 나무로 올라갔다. 이때 나무신이 놀라서 물었다.
"대체 그 게송이 그대에게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이 게송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으로, 모든 것이 실체가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법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려는 것입니다. 이런 나의 공양은 명예나 권력, 재물이나 좋은 가문에 태어나기 위함이거나 인간 세상이나 천상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깨달음을 이루어서 모든 중생들을 생사의 괴로움에서 구제하기 위함입니다."
보살은 다시 말하였다.
"인색하고 탐욕스런 자들은 모두 나와서 내가 지금 몸을 버리는 모습을 보시오. 아주 작게 보시하고는 그것을 뽐내는 사람들도 와서 내가 지금 게송 한 구절을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내던지는 모습을 보시오."
이렇게 말을 마친 뒤에 보살은 나무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러자 그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나찰귀가 제석천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서 그 몸을 받아 평지에 조심스레 내려놓은 뒤 찬탄하며 말했다.
"참으로 훌륭한 보살입니다. 당신은 한량없는 중생에게 이익을 주려고 칠흑 같은 무명 속에서 법의 횃불을 밝히려고 하신 분입니다. 제가 여래의 큰 법을 아끼느라고 당신을 번거롭게 해드렸으니 모쪼록 저의 잘못을 용서해주십시오. 당신은 틀림없이 내세에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이룰 것이니 그때에 저희를 제도해주십시오."
제석천은 이렇게 말한 뒤 절을 올린 뒤에 모습을 감추고 사라졌다.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을 받고 또 죽음을 거쳤을까. 하지만 세세생생 보살은 자신의 한 생 한 생을 다른 이를 위해 아낌없이 보시하고, 계를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지키고, 어떤 일을 당하여도 잘 참아내며, 정진을 쉬지 않고, 참선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과로 여기고, 지혜를 구하였다. 한 사람이 '부처가 되겠노라' 원을 세우고 보살행을 쌓아가면 수많은 중생이 도움을 받고 마음의 의지처를 얻는다. 자기의 깨달음을 위하는 일이 곧 모든 생명을 돕고 살리는 일임을 알아서 부처가 되기까지 그 일을 멈추지 않는 보살은 이제 마지막 생을 앞두고 마침내 이 모든 선업과 보살행의 과보로 천상에 태어났다.
참고경전
<수행본기경>
<자타카>
<현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