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본주의와 개인의 경제생활 - 백두산 암반수(巖盤水)
카테고리 없음 / / 2025. 4. 22. 22:04

자본주의와 개인의 경제생활

경제 발전의 효율적인 수단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설립한 애플 이사회에 의해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쫓겨난 후, 그는 회사를 설립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스티브 잡스가 떠난 후, 애플은 경영 위기에 처했고 어쩔 수 없이 스티브 잡스를 다시 CEO로 임명했고, 애플은 오늘날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날, 애플의 주가는 하락하고 경쟁사인 삼성전자의 주가는 상승했다. 스티브 잡스의 개인적 가치는 얼마나 될까? 주가가 등락을 거듭했으니 매우 귀중했을 것이다.

 우리는 사람의 능력을 인적 자본이라고 부른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모두 인적 자본이다. 하지만 인적 자본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 금융 자본을 제공하는 사람들을 자본가라고 부르며, 노동자에게 지급된 급여와 기타 비용을 공제한 후 남는 이익의 상당 부분을 가져간다. 자본주의는 금융 자본을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특별한 독점권을 부여한다.

 한 사업가는

 

 "한국에서 사업하는 것은 특권입니다."

 

라고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 자본을 제공하는 자본가들은 다양한 특권을 누렸다. 오늘날 개인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1990년대에는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더라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 대출은 금융 자본가에게만 열려 있는 특권이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점점 더 승자독식의 성격을 띠고 있다. 또한 소수의 승자에게 이익을 주는 구조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워런 버핏은 자신은 돈으로 돈을 벌지만, 노동으로 돈을 버는 회사 직원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낸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는 서민 자본주의, 카지노 자본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매우 효율적인 경제 발전 수단이다. 오늘날 인류의 번영은 자본주의 덕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불교는 2,600년 전에 이자를 허용했다. 이자를 허용하는 것을 넘어 장려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불교가 이자를 허용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기독교나 이슬람교와 비교하면 상당히 획기적이다. 『중아함경』에

 

 “먼저 기술을 배우고 재물을 얻고, 얻은 재물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농부나 상인에게 주고 남은 부분에 대해 이자를 받게 하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불교는 이자를 허용하고 사유재산까지 허용한다. 이처럼 불교의 경제관은 친시장적이고 친자본적이다. 심지어 어떤 승려가 많은 재물을 남기고 죽었는데, 그 재물이 왕이 탐낼 만큼 컸다는 구절도 있다.

 

 불교적인 관점에서 바람직한 경제생활

 

불교에서 바람직한 수입과 지출 활동은 무엇일까? 『잡아함경』에

 

“건강한 몸을 가지고 부지런히 재물을 구하라.”

 

라고 했다. 『중아함경』에

 

“먼저 기술을 배워야 재물을 얻을 수 있다.”

 

 라고 했다. 불교 신자로서 자신의 기술로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번 돈은 어떻게 써야 할까? 『별역잡아함경』에

 

“사치하지도 않고 검소하지도 말고 중용을 지키라.”

 

라고 했다. 소비에는 절제가 미덕이지만, 너무 인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수입과 지출은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할까? 『잡아함경』에 따르면, 올바른 생활이란 '수입이 너무 많고 지출이 너무 적지 않고, 지출이 너무 많고 수입이 너무 적지 않도록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따라서 지출이 수입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경제생활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절제 있는 경제생활이다. 부처님께서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출가하셨다고 하셨다. 그분은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팔정도(八正道)를 설하셨다. 팔정도 중 하나인 정명(正命)은 종종 바른 생활 또는 바른 직업으로 번역된다.

 

 바른생활이란 올바른 경제생활을 의미하며, 수입과 지출을 적절하게 하여 수입은 많고 지출은 적은 것을 말다. 『아함경』에서는 점술, 별 보기, 길흉을 점치는 것, 즉 '주술'을 삿된 직업으로 묘사다. 『장아함경』에서는 또한 "저울로 남을 속이지 말라"라고 한다. 바른 직업이란 정직하고 사회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직업이다.

 

 무소유는 소유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첫째,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둘째, 무언가를 소유하더라도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자이나교의 오계와 불교의 오계는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동일하다. 자이나교의 오계에는 무소유가 포함되지만, 불교에는 '술을 마시지 말라'는 계율이 있다. 불교는 무소유의 종교가 아니라 적당히 소유하는 종교로 보아야 한다. 적당히 소유한다는 것은 첫째, 자신의 재력에 적합해야 하고, 둘째, 목적과 기능에 비추어 적절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결함을 교정하는 불교적 방법

그 옛날 아프리카 여인 '루시'의 후손이며 지구 공동체를 생각하는 불교적 방법
그 옛날 아프리카 여인 '루시'의 후손이며 지구 공동체

 

 

 자본주의의 문제 중 하나는 불공평한 측면이다. 금융 자본가는 인적 자본가보다 유리하며, 자본이 클수록 그 이점은 기하급수적으로 커다.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표현은 정부가 대기업을 보호하여 파산을 막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빈부격차는 자본주의의 가장 큰 질병이다.

 

 최근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도 빈부격차는 자본주의 국가들 못지않다. 자본주의는 자산과 소득에 따라 사람들을 계층 구조의 어딘가에 위치시킨다. 초부유층, 즉 가장 부유한 계층은 계층 구조의 꼭대기에 있고, 가난한 계층은 가장 아래에 있다.

 빈부격차는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개인이 계층 구조의 꼭대기에 있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되었다. 부자들은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졌다. 계층의 맨 아래에 있는 사람은 매우 불리하다.

 

 가난한 사람들은 신용 등급이 낮기 때문에 대출을 받으면 높은 이자를 지불한다. 부자들은 신용 등급이 높기 때문에 낮은 이자를 지불한다. 실제로는 정반대여야 하지만, 경제 논리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에서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빈부 격차는 더욱 심화될 뿐이다. 불교는 자비의 종교다. 자비의 관점에서 보면 가난한 사람들은 정부나 사회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경전에서는 이상적인 불교 군주인 전륜성왕의 임무가 백성들을 잘 살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중아함경』에

 

“나라에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재산을 나누어 주고 도와주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전륜성왕은 견노념왕이 아들에게

 

“나라에 외롭고 나이 많은 사람이 있으면 물건을 주어 도와주고,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이 와서 무엇을 청하면 거절하지 말라.”

 

 라고 말한 것을 빌려서 잘 살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설명한다. 또한 『장아함경』에서는 부처님의 비유에서 왕과 대신의 대화에서 왕이

 

 “나는 모든 백성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였다.”

 

 라고 말한다. 병든 자를 치료하고, 굶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고, 거처를 제공하고, 심지어 잠자리까지 제공하는 포괄적인 후생 국가가 불교가 그리는 이상적인 상태다. 『증일아함경』에는

 

 “그는 베푸는 것을 좋아하여 스님과 브라만에게 공양을 드리고, 외로운 노인들을 돌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푸셨다. 사성문과 성읍 중앙에 창고를 짓고 금, 은, 잡화, 코끼리, 말, 수레, 옷, 침구, 약, 향, 꽃, 음식을 저장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아내를 주선해 주고 여러 가지 선물을 주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외로운 사람들에게 아내를 주선해 준다는 구절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부처님은 의식주에 대한 기본권, 즉 생존권을 보장하는 수준을 넘어선 복지 국가를 주창하셨다. 인간의 고독까지 해결하고 사람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복지 국가, 삶의 질 수준을 제공하는 복지 국가이다.

 

 복지의 낙원으로 여겨지는 북유럽조차도 이러한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지 않는다. 불교에서 이상적인 전륜왕의 예로 여겨지는 아소카 왕도 비슷한 시도를 했지만, 경전에서 주장하는 수준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뉴질랜드는 복지 국가다. 특히 아동수당이 넉넉하기 때문에 세 자녀를 둔 부모는 일하지 않고도 아동수당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복지 국가의 문제점은 일하려는 의지가 약해지고, 국민들이 복지에 의존하는 생활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별역잡아함경』에는

 

 “밤낮으로 온갖 꽃을 모으는 벌처럼 재물을 모아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불교 신자라면 정부의 복지 혜택을 받더라도 경제생활에 부지런히 참여해야 한다.

 불교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연기론’이다. 나와 세상은 분리될 수 없고, 나와 남도 분리될 수 없다. 온 인류는 아프리카 출신 ‘루시’라는 여인의 후손이라고 한다. 나의 경제생활, 남의 경제생활, 대한민국의 경제생활, 그리고 지구의 경제생활은 모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탄소 중립이 추진되는 이유는 한 국가의 노력으로는 지구를 기후 위기로부터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면,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더욱 공평한 자원 분배와 소득 분배를 추구해야 한다.

 불교는 모든 존재가 홀로 존재하지 않는 일체성(一體性)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 나와 분리되지 않은 사람이 불행하면, 그 사람의 불행은 범죄나 사회 불안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불교의 지혜로 빈부격차를 해소하지 않으면, 우리는 부자조차도 행복하지 못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불교가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방식은 경전에 기록된 대로 노숙자에게 거처를,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병든 사람에게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이 세상에 태어나면 기본적인 생존권이 보장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이기심으로 타인과 세상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소득 재분배 정책과 복지 정책을 통해 자본주의를 바로잡으려 하지만, 한계가 있다. 불교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극복하고 더 나은 경제 체제로 나아갈 수 있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불교의 지혜가 지구촌의 경제생활에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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