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5. 3. 15. 19:05

8. 인우구망 : 사람과 소를 모두 버리다

3) 원은 위험 가득한 무의식으로부터 보호하는 마법이다

 정신은 여전히 인간의 의식에게 비밀로 남겨져 있는 거대한 바다다. 바다를 항해할 때 아무런 준비가 없다면 그것은 직접적으로 죽음에 뛰어드는 어리석음일 것이다. 정신의 바다도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정신의 거대한 바다인 무의식에 자아의식이 함부로 다가서다가는 엄청난 화를 당하기 쉽다. 왜냐하면 무의식에는 동물적 원시성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성질들이 빈약한 자아구조를 뚫고 나오는 것을 정신분열증이라고 부른다. 

 

 이미 잘 알려진 『티베트 사자의 서』는 무의식의 세계를 상세하게 묘사해 놓았다고 융은 보았다. 책은 의식의 기능이 멈추는 죽음의 순간에 일어나는 정신적인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융이 『티베트 사자의 서』를 가장 차원 높은 심리학이고, 불교 심리학의 핵심을 담고 있는 지성적인 철학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티베트 사자의 서』가 '마음'이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알려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융은 이 책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정신적 현상들은 실제로 현실의 정신분열증 환자의 증상들과 구분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던 것이다. 

 

 사자死者의 영혼은 '평화의 신'이나 '분노의 신'들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인간 정신의 투영이라는 사실을 『티베트 사자의 서』는 죽은 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또한 경전은 정신이 이율배반적인 성격이라는 사실도 말한다. 즉 사자에게 분노의 신과 평화의 신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자가 생전에 지녔던 의식 수준과 질적 수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존재 자체가 의식의 수준과 의식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존재가 삶을 지속하는 동안에 의식의 수준과 질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의식의 위험으로부터 결코 안전할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은 의식이 무의식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에 정신분열증과 같은 병리현상을 실제로 겪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는 아니다. 『티베트 사자의 서』에 따르면 죽음의 순간에는 누구나 반드시 정신분열증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무의식의 위험한 요소들은 수행과정에서 실제로 많이 경험한다. 그것들 가운데는 존재를 파괴할 수도 있는 위험한 것들도 많다. 그러므로 『능엄경』에서는 구경究竟으로 가는 과정에서 많은 마군들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과 그것에 대처하는 법을 설하고 있다. 무의식의 부정적 작용들을 불교에서는 마구니라고 부른다. 

 

알렉스 그레이(Alex Grey, 1953~ ) 작품

 

『능엄경』은 오십여 가지의 마구니를 변별하고 유혹을 물리치는 장이 있다. 그중에서도 심리학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 바로 무서운 환영들을 경험하는 몽마夢魔와 부처의 환영이 나타나 수행자에게 신통력을 준다는 수기마授記魔다. 몽마는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 말하는 카르마 환영과 유비되는 것이다. 

 정신병이란(Psychose)이란 의식이 무의식의 내용들을 제어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융은 무의식의 내용들이 지극히 비이성적 성질을 가진 환영에 불과하지만, 자아의 구조가 병적으로 허약한 사람은 환영을 실체로서 경험하게 된다. 의식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순간에는 그러한 환영들은 언제든지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의식의 기능이 사라지는 순간 그것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장치 또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쿤달리니 요가와 같은 정신수련에서도 정신적 위험성이 나타난다. 융은 이것을 의도적으로 일으키는 정신이상 상태라고 규정한다. 그러므로 심리상태가 불안정한 사람이 이러한 경험을 한다면 진짜 정신이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왜 무의식에 대해서 알아야 하며, 왜 그것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융이 무의식의 세계에 무지하면서 무의식에 함부로 접근하는 것은 인간존재의 뿌리를 치는 일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티베트 사자의 서』 역시 지옥은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기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대승기신론』에서 언급되는 마장魔障을 보면, 천상天像 보살상이나 여래상이 나타나 신비한 주문을 설하는 환상을 보는 것, 참된 열반이라며 공적空寂함에 빠져 있는 것, 다른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보는 타심지他心智를 얻는 것, 진여삼매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며칠이고 정定중에 머물러 있으면서 기이한 행동을 하는 것 등이다. 

 

 자아가 무의식의 신비를 체험하면서 자아는 스스로 특별한 존재가 된다. 이것은 수행자가 가장 착각하기 쉽고 그 유혹을 이겨내기 힘든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그것에 대한 경각심이 높기도 하다. 또 한 경에서는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일생생활이 그대로 마장魔障의 세계라고 말한다. 

 마장의 세계란 무의식의 세계다. 자신의 무의식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한다는 그 자체가 바로 마장의 세계다. 무의식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말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니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그것이 어찌 정상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자신이 의식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산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한 융의 말은 몇 번이고 언급하여도 지나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아 자체가 무의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찾아 나서는 수행자는 자기 자신을 의식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수행의 과정에서 마군을 만나는 것은 자기 안의 또 다른 인격을 만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이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능엄경』은 마군의 세계를 그 자체로 공空하다고 말한다. 공하다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군은 무의식이기 때문이다. 자아 중심의 삶이란 곧 무의식의 삶이다. 무의식적으로 산다는 것은 곧 미혹의 세계에 얽매어 있다는 말이다. 무의식이란 정신의 내용이 의식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여의 의식성이 비치면 무의식의 내용들은 의식의 내용으로 바뀐다. 

 

 무의식에 대한 자아의식의 몰이해가 무의식으로 하여금 두려운 환영으로 드러나게 한다. 무아의식에 의해서 무의식의 본래적 성질이 이해되면 그것은 더 이상 마군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정신의 근원으로서 에너지 기능을 한다. 인간은 정신적 에너지를 본성에 의해서 공급받는다. 즉 무의식은 의식적 에너지를 만드는 정신의 뿌리다. 무의식이 긍정적 에너지가 될지 부정적 에너지가 될지는 자아의식의 성숙도에 달려 있다. 

 

『능엄경』은 마군들을 변별하고 그것의 유혹으로부터 빠져나오는 방법으로 여래장묘진여성如來藏妙眞如性을 알려준다. 진여는 광명이다. 광명이란 곧 의식성이다. 진여의 의식성이란 무아의식이다. 그것은 부분의식으로 전체를 부정하는 거짓된 의식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는 참된 의식이다. 

 경이 의식성을 해결방법으로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마장이 무의식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십우도에는 마장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을 융에게서 들어본다.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접촉하면 이미 그때는 둘 사이의 대립도 사라진다. 따라서 꿈의 처음 부분에서 상반된 방향으로 달아나는 뱀들은 곧장 제거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의식과 무의식 간의 갈등이 곧바로 단호하게 지양되며 의식은 '순환적 발전'이 되는 가운데 긴장을 견뎌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생겨난 마법의 원 때문에 무의식 역시 밖으로 뚫고 나올 수 없게 된다. 밖으로 뚫고 나온다면 그것은 정신병(Psychose) 같은 상태가 될 것이다. 
 <꿈에 나타난 개성화 과정의 상징>

 

 의식과 무의식이 대립하다는 것은 의식이 무의식의 내용을 부정하거나 억압한다는 의미다. 의식하지 못하는 한 무의식은 무의식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분리된 정신은 더 높은 차원으로 성장되지 않는다. 오직 무의식에 대한 관조만이 정신의 순환적 발전을 가져오게 할 수 있다. 

 마법의 원이란 만다라다. 이것을 왜 마법의 만다라라고 하는가 하면, 만다라는 통합의 원이기 때문이다. 통합은 의식과 무의식의 대립이 사라지게 만든다. 대립이 사라지면 무의식은 더 이상 의식에게 위험성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두 영역은 상호 보완적이 된다. 그러므로 무의식의 내용들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의식화 과정을 밝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만다라 상징에 관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언제나 반복되며 어디에서나 동일한 현상학적 특징 속에서 정신의 자율적 사실을 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그 심층 구조와 최종적 의미가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는 일종의 원자핵과 같다. 또한 그것은 하나의 의식 태도의 실질적인(다시 말해 효과적인) 영상으로 볼 수도 있는데 그것은 목표도 의도도 제시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포기로 인해 자체의 활동력을 만다라의 잠재적인 중심점에 완전히 투사하게 된다. 
 <꿈에 나타난 개성화 과정의 상징>

 

알렉스 그레이(Alex Grey, 1953~ ) 작품

 만다라는 정신의 자율성이다. 그러므로 그 자체적으로 결정하고 그 자체적으로 진행한다. 자아의식의 생각과 목표가 그것에 개입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무아의 절대의식이 드러나면 자아의 상대의식은 스스로 주도권을 포기하게 된다. 즉 모든 삶은 무아의식에 의해서 진행되고 관조된다. 

 자아는 자신의 의도대로 살지 못하고 무아의 관조 대상으로 남게 된다. 자아가 이렇게 되는 필연성을 융은 다음과 같이 본다. 즉 자아는 무아의 이러한 자율성이 자신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리된 정신은 분열이며 혼란이자 무질서다. 그러나 중심으로의 완전한 집중이 일어나면 '마법의 원'이 생겨난다. 마법의 원은 불교의 한마음(一心)이다. 한마음은 '디오니소스적 비밀의 심연'을 적극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된다. 마법의 원을 이끄는 것은 무아의식이다. 

 

 그러므로 무의식과의 갈등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무아의식에 의해서 자아와 무의식은 있는 그대로 관조되고, 자아에 의해서 왜곡되었던 모든 진실은 그 실재를 드러낸다. 융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탁월한 지성만이 할 수 있는 어려운 조작 - 말하자면 역설성으로 생각해야 하는 - 이 성공했음을 꿈은 보여주고 있다. 뱀들은 더 이상 달아나지 않고 네 모퉁이에 배열되며, 변신이나 통합의 과정이 이루어진다. 적어도 꿈이 예견한 바에 의하면, '변용'과 '규명', 즉 중심의 의식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잠재적인 성과가 의미하는 것은 - 그것을 주장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의식이 그러한 중심과의 연관 관계를 또다시 상실하지 않는다면-인격의 신생新生이다. 
 <꿈에 나타난 개성화 과정의 상징>

 

 '중심의 의식화'는 인식이 자아의 상대의식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무아의 절대의식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이것은 부처 혹은 자기(Self)의 의식화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불교가 말하는 깨달음이다. 의식이 중심과의 연관관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인격은 새로 완전히 태어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의 인격이 자아 중심의 인격이었다면, 새로 태어난 인격은 무아 중심의 인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융은 이것을 '의식의 변용'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인격의 새로운 탄생은 결코 평범한 지성에서 일어날 수 없다. 뱀이 네 모퉁이에 배열된다는 것은 배제되었던 악의적 측면을 포함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전의 인격이 선의적 측면만이 강조되었다면 새로 태어난 인격은 선과 악의 양 측면을 모두 포괄하는 전체성이다. 전체성을 이룬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탁월한 지성만이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십우도의 길은 탁월한 지성에 의해서 가능해진다. 탁월한 지성은 지식의 축적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알고자 하는 열정적인 충동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즉 무아의식은 최고의 의식 수준과 최고의 질적 수준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수준에서는 무의식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겪지 않는다.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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