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장식 축산과 불교 - 백두산 암반수(巖盤水)
카테고리 없음 / / 2025. 4. 23. 17:14

공장식 축산과 불교

 공장식 축산의 형태와 현재

 오늘날 우리 식탁에 오르는 동물들은 농장이 아닌 공장에서 사육된다. 작은 우리에 동물을 가두고 마치 산업 제품처럼 고기를 생산하는 방식을 '공장식 축산'이라고 한다. 여기서 동물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 최저 비용으로 최대량의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촘촘하게 짜인 자동화된 생산 과정의 일부이다.

 현대 농업은 산업 농업이며, 공장식 축산 역시 산업 농업의 한 형태이다. 산업 농업은 전통적인 농업 경영 방식과는 다르다. 산업 농업은 처음부터 판매를 목적으로 곡물을 재배한다. 자급자족이 아닌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도입하여 넓은 땅을 경작하여 이윤을 극대화하고, 기계를 사용하여 최소한의 인력으로 농사를 지어 인건비를 절감한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육류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육류 생산량 증가는 1960년대 녹색 혁명과 산업 농업의 영향이다. 곡물 생산량이 증가하여 가축이 먹고 자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이나 염소처럼 풀을 먹는 동물의 생산은 크게 변하지 않은 반면, 곡물을 먹는 닭, 돼지, 소의 사육은 놀라울 정도로 증가했다. 이른바 '축산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공장식 축산의 특징은 넓고 집중된 공간에서 사육되고 외부에서 곡물을 먹는다는 것이다. 소, 돼지, 닭의 사육 규모가 커졌고, 닭의 경우 한국에서는 5만 마리, 미국에서는 100만 마리를 사육해야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한다.

 

 공장식 축산의 심각한 문제점

 산업 농업과 공장식 축산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많은 이점을 제공한다. 생산자는 최소 노동으로 최대 이익을 얻을 수 있고,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소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단축된 노동 시간과 물질적 풍요라는 달콤한 열매를 누릴 수 있다. 덕분에 이전에는 소수의 부유층만 즐기던 고기를 이제 일반 대중도 즐길 수 있게 되었지만, 여러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첫째, 인간적인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 좁은 공간에서 대량으로 사육되는 소, 돼지, 닭은 광우병, 구제역, 조류 인플루엔자 등 다양한 전염병에 취약하다. 전염병이 만연하면 가축은 종종 살처분되고 매몰된다. 이러한 살처분은 도살되는 동물에게 가장 치명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큰 부담이다. 전염병 예방을 위해 동물에게 상당한 양의 항생제를 투여하는데, 이는 결국 고기를 먹는 인간의 체내로 유입되어 인간의 건강을 위협한다. 대량 생산된 육류 섭취로 인해 발생하는 비만, 당뇨 등 각종 성인병 또한 인간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가 될 것이다.

 둘째, 생태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공장식 축산에서 사육되는 동물들은 풀을 먹지 않고 농장 외부에서 공급되는 옥수수와 콩으로 만든 곡물 사료를 먹는다. 가축은 곡물의 절반 이상을 먹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고기를 포기한다면, 가축이 먹는 곡물은 전 세계 약 8억 명에 달하는 굶주리는 빈곤층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

 셋째, 동물의 관점에서도 많은 문제가 있다. 밀집된 환경에서의 대량 사육은 동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다. 그중에서도 마구간이라는 철창에 갇힌 암퇘지, 성냥갑 같은 우리에 갇힌 산란계, 좁은 우리에 갇힌 송아지의 삶은 악명 높다. 그들이 느끼는 고통은 문제이지만, 정해진 삶의 방식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중요한 점은 이 동물들이 견뎌내야 하는 고통과 강요된 생활 방식이 소수의 부도덕한 축산 농가의 탐욕으로 인한 우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고 생산비 절감이 필수적인 산업적 축산 환경에서 이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에서는 비용 효율적인 방법이 우선시 되고, 비용 효율적이지 못한 방법은 도태된다.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생명체로써 동물의 존엄성을 존중할 여지가 없다.

공장식 축산에서 윤리적 소비로의 변화를 모색

 불교에서 바라보는 현시점

 불교에서는 생명을 중생(衆生) 또는 유정(有情)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도 포함된다. 연기와 업에 따르면 생명은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상의 육도(六道)로 윤회하는 존재다. 모든 생명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사라지며, 인간 세상은 긴 여정의 짧은 순간에 불과하다.

 

 사람은 동물이 될 수 있고, 동물은 인간이 될 수 있다. 고대 사상에서 부처님의 전생은 동물로 묘사되었다. 부처님도 동물이었다는 생각에서 동물과 인간의 위계와 차별이 해체된다. 이러한 점에서 불교는 모든 존재가 하나가 되는 '의존적 공동체'를 지향한다. 불교의 핵심 원리는 중생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며 자비로 돌보는 것이다.

 

 불교의 첫 번째 계율인 아힘사는 불살생과 불행의 수동적인 의미를 넘어, 돌봄의 능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불살생과 자비는 거의 동일한 개념이다. 불살생은 모든 생명체의 자기 보존 활동을 방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다양한 필요와 복지를 실현하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것을 의미한다. 불살생은 나와 다른 존재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는 원칙에 입각하여 다른 존재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불살생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고기를 먹지 않고 완전 채식을 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까? 과연 가능할까? 현대 사회는 다양한 이념과 종교가 공존하는 다원주의 사회이다. 고도로 훈련된 수행자들조차 지키기 어려운 엄격한 윤리와 계율을 일반 대중에게 강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다원주의, 공존을 모색하는 해결 방안

 현대 생태학이 육식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만약 인간과 사자와 같은 육식 동물이 사슴과 같은 초식 동물을 사냥하지 않았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초원의 사슴 개체 수가 급격히 증가하여 곡물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생태계는 파괴되고 결국 사슴은 굶어 죽을 것이다.

 

 따라서 생태학은 '먹고 먹히는 것', 즉 '삶과 죽음'을 생태계의 건강을 유지하는 중요한 원칙으로 여긴다. 순환하는 에너지의 흐름이 없다면 생태계는 유지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태학자들은 육식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자연법칙으로 여긴다. 그러나 생태학자들은 공장식 축산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야생 생태계가 축산으로 탈바꿈되고 있으며, 지구의 마지막 보루인 아마존마저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도덕적 분별력을 가진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공장식 축산은 문제가 있다. 먹고 먹히는 것은 생태계의 불가피한 일부이지만, 과연 그렇게 고통스럽게 동물을 키우는 것이 괜찮을까? 싼 값에 고기를 사려고 평생 작은 우리에 가두어 두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동물은 물건이나 식량이 아니라,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다. 그렇다면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필요하지 않을까?

 공장식 축산은 인간 중심주의와 경제적 효율성의 가장 극단적인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인 한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기 어렵고, 경제적 존재인 한 경제적 효율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제적 동물이지만, 동시에 윤리적 동물이기도 하다. 경제적 효율성은 중요하지만, 그 한계 또한 인지해야 한다. 합리성을 넘어선 정당성의 차원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이제 공장식 축산 대신 유기농과 동물 복지 농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값비싼 유기농 농산물을 구매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건강과 웰빙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성과 도덕성과 관련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것이다.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합리적 소비'를 넘어 '윤리적 소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경제적 손실일 수 있지만, 동물에게는 그동안 견뎌야 했던 엄청난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인간의 건강, 동물복지, 그리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소비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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