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가 위기 시 나타난 서산대사의 리더십 - 백두산 암반수(巖盤水)
카테고리 없음 / / 2025. 4. 15. 17:43

국가 위기 시 나타난 서산대사의 리더십

 승병 활동을 중심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리더십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조직은 리더에 의해 운영되며, 리더의 행동은 조직의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시대의 흐름과 관계없이 리더십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사람들을 떠나게 하는 리더십과 사람들을 모으는 리더십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모으는 리더는 어떤 덕목을 가져야 할까요?

 

 첫째, 열린 마음으로 조직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

 둘째, 현실을 직시하고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는 열정을 갖는 것,

 셋째, 신뢰와 존경을 받는 높은 인격과 공감 능력을 갖는 것입니다. 이러한 리더십 덕목은 국가적 위기 속에서 더욱 요구된다.

 한국 불교사에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현실을 직시하여 나라와 중생을 구한 대표적인 승려로 존경받는 인물은 청허휴정(1520-1604)이다. 오랫동안 묘향산 서쪽에 살았기에 묘향산인 또는 서산대사로 불렸던 휴정은 아명은 운학(雲學)이었다.

 

 15세에 진사과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친구들과 함께 지리산 화엄사, 연곡사, 칠불암을 순례하고 원통암에서 부용영관(1485-1571)에게 불교를 배우고 숭인스님의 문하에서 출가했다. 숭인스님의 “마음을 비우고 공부하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열심히 수행하던 중 용성(지금의 남원)에 사는 친구를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한낮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다.

 31세에 부활된 승과에 최고 성적으로 급제하고, 이후 중선(中選)을 거쳐 37세에 선양종판사가 되었다. 또한 문정왕후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은 대스님 허응당의 후계자로 봉은사의 주지가 되었다. 한편,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휴정은 여러 요직을 역임하였는데, 신라시대에 창건된 화개동천의 내 은적암을 중건하고 청허원을 건립하여 승려로 생활하며 선가귀감(禪家歸感) 등의 저술을 남긴 10년은 그의 가장 빛나는 시기였다.

 

 따라서 이때가 휴정의 사상이 완성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휴정은 삼가귀감을 저술하여 유교, 불교, 도가 모두 근본 마음을 밝히고 계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를 통해 대중이 조화롭게 소통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임진왜란 발발과 그의 활약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할 관리들은 정쟁을 멈추지 않고 도피에 바빴다. 묘향산에서 수행하던 서산대사는 선조로부터

 

 “어려운 나라와 백성을 자비로 구해 달라.”

 

 라는 간곡한 부름을 받았다. 나라가 불교를 버렸지만, 불교가 나라를 버릴 수 없음을 깨달은 서산대사는 자신의 계율을 어기더라도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대승불교의 정신이며, 진정한 부처님 제자의 길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73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모든 승려들에게 편지를 보내 구국에 앞장서 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병들어 전쟁에 나갈 수 없는 승려들에게는 절을 지키게 하고 부처님께 나라를 구해 달라고 빌게 했으며, 나머지 승려들에게는 의병을 조직하여 전장으로 나가 왜구를 물리치고 나라를 구하게 했다.

 

 

 "여러분! 우리 불교는 살생을 금합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여래의 가르침을 잊고 우리 생명을 죽이고 있으니,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한, 우리 모두는 조국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조국이 있어야만 불교를 전파할 수 있습니다. 이 늙은 스승인 서산이 앞장서 ​​적진에 뛰어들어 위급한 백성과 조국의 운명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 것입니다. 전국 사찰의 모든 스님들은 주장자 대신 즉시 창과 칼을 들고 전장에 나가 충성을 다해 나라를 위해 봉사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스님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보시’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창과 칼을 들고 전장에 나가는 것은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크게 어기는 것이다. 더 나아가 스님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중생을 구제하는 자비의 방편이므로 대승계율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자비의 실현을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법사를 칼과 바꾼 서산대사의 시대정신이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경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자는 칼과 활을 들어 불교 교단과 수행자를 보호해야 한다. 이는 결코 계율을 어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효와 충성을 촉구하는 감동적이고 유명한 포고에 따라 금강산 유점사의 송군 유정, 해남 대흥사의 뇌묵 처영을 비롯한 전국의 승려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섰다.

 

 서산대사께서 평안남도 평원 법흥사에 1,500여 명의 승려를 직접 모으셨고, 그의 제자 사명유정 역시 1,000여 명의 승려를 인솔하여 관동지방에서 와서 팔도수군 승군에 가담하여 평양성을 탈환하는 데 공헌하였다.

 

 2년 후, 서산대사는 모든 일을 제자 유정과 처영에게 맡기고 묘향산에 입산했다. 그는 "공수신퇴(功遂身退)", 즉 "목표를 달성하면 물러난다"는 순수한 호국 불교 정신과 맑고 공한 무아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운 승병들의 모든 장수들은 서산대사의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눈부신 공적을 세웠지만, 대제의 제자들 대부분은 스승의 본보기를 따라 국가에서 제공하는 관직과 봉급을 사양했다. 또한 의병들은 일본군도 중생(살아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여 비석을 세우지 않았다. 살생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계율을 어긴 자신들이 공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당시의 의로운 군인들은 세속적인 명예와 부를 초월하게 되었다.

 

 시대를 초월한 지도자의 올바른 덕목

 리더는 물질적인 보상에 대한 욕망이 아닌 열린 마음으로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 리더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보상은 봉사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나라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가 아니라, 당신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라는 말에는 이러한 보상이 함축되어 있다. 이는 일반 시민이 아니라 리더에게 적용된다.

 로마 제국의 위대한 군사 지도자이자 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의 저서 『명상록』에서 지도자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 지혜, 정의, 불굴의 정신, 그리고 절제를 강조했다. 지도자는 명확한 지혜로 나라의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하고, 열린 마음으로 옳고 그름을 명확히 분별하며, 이를 실천해야 한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강한 정신력과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고 균형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절제를 갖춰야 한다. 이를 일깨워주는 유명한 시는 서산대사의

 

“눈밭을 걸을 때(踏雪野中去) /
함부로 걷지 말자(不須胡亂行) /
오늘 내가 남기는 발걸음은 후세의 이정표가 되리라(今日我行跡)”

 

 다. 지도자가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일깨워주는 참으로 훌륭한 시다. 우리가 남기는 발걸음은 후세의 이정표가 될 수 있으니, 한 걸음도 흔들리지 말라는 메시지이다.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승병장 서산대사의 늠름한 모습
AI로 만들어본 서산대사의 '사람을 모으는' 리더십


 백범 김구 선생은 이 시를 좌우명으로 삼아 하루 세 번씩 읊고, 직접 실천했다. 1948년 남북회담을 위해 38선을 넘으면서 이 시를 읊었다고 전해진다. 한편, 고(故)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이 시를 붓글씨로 자주 사용하셨고, 몇 년 전 모 방송국 연말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한 배우가 이 시를 인용하며 연기 인생을 마감할 때까지 결코 부주의하지 않고 깨끗한 길을 걷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는 시대를 초월하는 지도자의 올바른 덕목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한마디로, 강직하고 혹독한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은 서산대사는 임진왜란이라는 국난 속에서 병사들을 모아 나라를 지키고, 모든 중생을 자비로 보살피려 애썼다. 그 기반에는 조직의 명확한 비전, 현실 직시와 구국에 대한 열정, 믿음직스럽고 존경스러운 고결한 인품, 그리고 공감을 바탕으로 ‘백성의 마음을 모으는’ 리더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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