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분노 바이러스의 전염, 예방에 대한 고찰 - 백두산 암반수(巖盤水)
카테고리 없음 / / 2025. 4. 11. 15:49

분노 바이러스의 전염, 예방에 대한 고찰

분노 조절 장애 청소년

  혼네(本音)와 타테마에(建前)를 구분하는 전통 일본 문화에서, 자신을 절제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은 공동체의 미덕이다. 물론 감정을 절제하는 것만이 일본 사회의 유일한 미덕은 아니다. 18세기 후반 고전 학자이자 가수였던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무라이 정신을 가라고코로(唐意), 즉 중국의 예의로 여겼다.

 

 그는 여성처럼 울 수 있는 감정의 해방을 일본 특유의 문학 정신, 즉 모노노아와레(物の哀)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것이 물질적인 것에 대한 슬픔이 일본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유교 왕실 문화에서 절제와 정직이 동아시아 지배 계층의 규범이었다면, 평민들은 우아한 품위에 얽매이지 않는 저속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상류층과 하류층의 생활 방식은 혼재되어 있다. 사실, 에도 시대부터 상업 도시로 번영했던 오사카의 상인 문화는 교토에 뿌리내린 귀족 문화와는 달리 기묘한 감정과 생동감 넘치는 표현을 표방한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연예 기획사인 요시모토 흥업(1912~)이 오사카에 본사를 둔 이유이기도 하다.

 

 2000년경, 요시모토 흥업의 코미디언들은 만담과 개그 장르에서 분노(키레, 切れ)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는 다양한 버전이 있었고, 심지어 진분노(마지기레, 真切れ)와 야쿠기레(逆切れ, 적반하장)라는 캐릭터까지 탄생했다. 한국에서는 이를 '고함치는 개그' 또는 '부락 개그'라고 한다.

 

 분노를 억누르는 것이 사회적 규범인 일본에서는 분노를 연기하는 것이 사람들이 웃는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쓴웃음을 지으며라도 극복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함을 느낀다. 분노 게이지가 곳곳에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일본어로 '잘라내다, 잘라내다'라는 동사는 '키레로(切れる)'였다.

 

 2000년 무렵, 이 단어는 '인내심으로 묶었던 줄이 끊어지고 분노가 솟구쳤다', '혈관이 끊어져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와 같은 '이성적인' 분노 상태를 뜻하는 속어가 되었다. 당시 '잘라내다'라는 표현은 이중적인 상징성을 지녔다. '키레(잘라내다)'는 거품 경제 붕괴 후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불황과 당시 격동의 사춘기를 보내던 10대들의 행동 패턴을 포착한 모호한 표현이었다.

 

 1998년 1월, 지역 중학교에서 13세 남학생이 26세 여교사를 접이식 칼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평소 온순하던 소년이 선생님의 질책에 화를 냈다. 일본 사회의 충격과 여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 17세 전후의 소년들인 '키레루 세대'에 의한 흉악 살인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고, 학교 폭력과 괴롭힘 또한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어릴적 분노 조절 장애가 있던 아이가 발달 장애를 가진 어른으로 성장한 모습
발달 장애 어른

 '발달 장애 어른'

 2000년대에 일본 사회는 "키레루 청소년"을 두려워하여 애국심을 기반으로 한 도덕 교육과 소년법에 따른 처벌 강화라는 양면적인 정책을 시행했다. 2000년과 2007년에 소년법이 연이어 개정되어 형사 처벌 연령이 16세에서 14세로 낮아지고, 11세부터 소년원에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유기징역의 상한도 15년에서 20년으로 상향 조정 되었다.

 

 청소년의 "이유 없는" 폭력 범죄와 괴롭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은 2006년에 교육 기본법을 개정했다. 한국 언론은 애국심을 강조한 교육 기본법 개정을 일본의 우경화의 증거로 보도하며 반일 감정을 부추겼다. 청소년에게 애국심이 왜 필요한지, 애국심이 아니라면 어떤 대안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2017년 한국 사회에서 14세 미만 청소년에 의한 집단 폭력 및 초등학생 살해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소년범 연령을 12세로 낮추고, 강력범죄에 대한 청소년 보호 조치를 폐지하고,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이들을 혐오하고, 아이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조차 묻지 않고 교도소에 보내려는 어른들. 범죄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무시하고, 아이들을 혐오하고 그들의 존재를 없애려는 어른들. 이들은 훈육이라는 명분으로 아이들을 학대한다. 이러한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겪거나, 아이들을 학대하는 사이코패스 부모가 된다.


 일본의 개정된 소년법은 언론의 용의자 실명 보도 금지와 청소년 보호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청소년이 보호자의 정당한 감독을 따르지 않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집에 들어가지 않거나, 범죄자나 부도덕한 사람과 어울리거나, 위험한 장소에 들어가거나, 자신이나 타인의 미덕을 해치는 행위를 할 경우 가정 법원에 신고해야 한다.

 

 이러한 의무는 청소년 비행을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해 제안되었다. 그러나 청소년이 실제로 축적한 '근거 없는' 분노의 원인을 밝히고 씻어내는 측면에서 사회적 보호 의무는 여전히 소홀히 여겨졌다.


 분노 조절 장애가 소년원이나 교도소에서 재활되었다면 사회는 점차 더 명확하고 투명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한국,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무차별적인 살인이 빈번하게 발생했으며, 어린 시절부터 불안과 불만을 품고 자라면서 분노를 극복하지 못한 인격 장애 환자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아동 학대 사건도 매일 발생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은 분노의 사회에 살고 있다.


 2007년 저서 『급속한 노인』에서 작가 후지와라 토모미는 노인 특유의 의사소통 장애가 노인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사회적 분노를 심화시키는 현상을 분석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여의사에게 폭압적으로 행동하는 고집 센 노인들은 치매의 징후일 수 있다.

 

 그러나 노인의 분노 폭발이 사회적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징후는 이미 예견되어 왔다. 2016년에는 일본 자위대원이 아내의 퇴직금 탕진과 이혼 판결에 불만을 품고 공공시설에 폭발물을 설치하여 살인을 시도했다. 한 한국인 노인은 토지 보상에 불만을 품고 숭례문에 불을 질렀다.

 ‘분노 폭발’ 현상이 중장년층까지 확산됨에 따라, 분노 조절 장애를 성인 ‘발달 장애’로 규정하고 대처 방안을 제시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의 한 신경 과학자가 '분노 폭발의 중요성'과 '분노의 기술'에 대해 강의했다. 그는 사람들이 쉽게 보이면 '착취당하는'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현명하게' 화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착한 척'하며 남을 착취하고 사기꾼을 이용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착하게 행동했는데 상대방이 나를 이용한다면, 상대방을 나쁜 사람으로 만든 당신의 잘못이다. 그러니 착하게 살지 말고 정의롭게 살아라."

 

 현명한 사람은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행동하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는다. 내 잘못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상대방에게 화를 내고, 이는 자신의 모순을 모르고 남만 탓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다. 이것이 바로 모두가 남을 탓하고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기며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방식이 아닐까요?

한국에서 어느 대학교수의 칼럼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젊은이들이여, 분노하라!"라는 글이 있었다. 하지만 어른들이 불공평한 사회를 만들었다면, 그들 역시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 제시해야 한다.

 

 분노의 원인을 알고 해소하는 방법이 과제

사회적 규범과 집단 논리에 비교적 충실한 한국과 일본에서는 '공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증오에 찬 여론을 조성하면 분노의 화살은 정당화될 수 있다. 악의적인 댓글이 쏟아지고 '이기심과 무지'라는 편향된 잣대를 바탕으로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좌우의 정치적 갈등, 반일·반한이라는 집단적 정서도 한쪽의 시각에서 상대편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정당화했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노출과 여론 조작이 가능한 오늘날, 과거처럼 지위, 나이, 재산, 인기에 기반한 횡포와 괴롭힘은 쉽게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공정, 형평, 정의의 붕괴라는 사회적 모순을 방패 삼아 자신의 모순을 은폐하고 자신의 공격성을 정당화하는 '사이코패스'들이 늘어나고 있다.

 

 모두가 자기 기준에 맞춰 자신에게 유리한 계산만 내세우기에, 오늘날 우리는 인권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면서도 타인을 진정으로 존중하며 소통하는 법을 모른다.


 바보는 화를 내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일본어 '키레루'는 관용어구 "머리가 날카롭다(頭が切れる)"에도 사용된다. 그렇다면 새로운 단어 '키레로'를 재정의할 수 있다.

 

 "대인관계나 사회적 규범에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폭발하는 영리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의 모습 또는 행동."

 영리한 사람은 큰 것을 이루고 싶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불안해진다. 상대방이 내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반응하지 않을 때 좌절감이 쌓인다. 그렇게 불안과 스트레스가 쌓이면 짜증이 나고, 그 압박감이 폭발하면 상대방에게 화를 낸다.

 결국 똑똑하지만 실력 없이 과시하는 사람들은 쉽게 화를 낸다. 자주 화를 내면 몸도 망가진다. 화를 참아도 병이 난다. 화를 많이 삼킬수록 삼투압이 커지므로 한꺼번에 폭발하기보다는 조금씩 풀어내는 것이 좋다. 결국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전혀 화를 내고 싶지 않다면 사람들이 당신을 이해하도록 만들고 사람들과 협력하는 능력을 키우면 된다. 한국도 2026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베이비붐 세대는 100세 시대에 어떻게 화를 내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노인을 미워하지 않고, 노인을 화나게 하지 않는 사회는 모든 사람의 연구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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