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에서 보는 사회 참여
부처님의 가르침은 경전에 담겨 있으며, 시대와 지역을 넘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해져 왔다. 그 가르침은 8만 4천 경전에 달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많다. 이 가르침들은 우리가 사회(世間, loka)에서 연기(緣起) 관계에 있는 사람들(世人, bahujana)과 함께 행하는 다양한 행위(共業, co-karma)를 통해 사회적으로 구현되고 생생하게 전달된다.
경전에 담긴 가르침을 따라 우리가 걷는 길은 단 하나의 길이 아니라 대중과 함께 걷는 큰길이다.
부처님은 『중아함경』에서 연기(緣起)를 보는 사람은 법(法)을 본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연기와 세상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고 말씀하셨다. 연기법은 현실의 고통이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조건[緣起]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인간의 노력[業]을 통해 변화될 수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부처님은 소위 전도(傳導)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사람과 하늘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여행을 떠나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을 없애고, 그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진리로 인도해야 함을 강조했다. 전도의 길은 승가와 사회를 연결하는 고리이며, 사회 활동에서 수행의 빛을 비출 수 있도록 하는 사회 참여에 대한 권고로 볼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사회
『유행경』에서 마가다국 왕 아사세가 바지(巴治) 나라를 공격할 때 조언을 구했을 때, 사회나 나라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계율을 설명하기 위해 ‘칠불이법(七不退法)’을 설했다.
① 자주 모여 정의를 논하고,
② 상하가 화합하여 서로 존중하고 복종하되 어기지 아니하며,
③ 법을 지키고 금할 것을 알며 어기지 아니하며,
④ 많은 스승과 벗을 보호하고 본성적으로 공경하고 섬기도록 힘쓰고,
⑤ 정념을 지키고 효도와 예의를 중시하며,
⑥ 청정한 행실을 닦고 본능에 따르지 아니하며,
⑦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남을 중시하고 자신을 뒤로 미루면 화합하여 쇠퇴하지 아니한다고 했다.
이를 통해 탐욕과 소유욕을 채우기보다는 서로 나누고 돕는 사회적 윤리적 실천이 공존과 번영의 길임을 지적한다. 불교가 추구하는 이상세계인 용화세계는 평화가 실현되는 세상이다. 『미륵대성불』에서는
온 세상이 오직 평화로워 도둑의 근심이 없고, 도시나 시골이나 문을 잠글 필요가 없다. 늙고 병드는 데 대한 걱정이나 물, 불로 인한 재앙이 없으며, 전쟁과 굶주림과 독극물의 피해가 없는
세상을 말하고 있다.
세상은 연기적 관계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탐진치 삼독에 물든 중생들이 살아가며 온통 고통에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그 고통을 이겨내며 살아가야 하는 사바세계(娑婆世界, sahāloka)라고 부른다. 용화 세계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 깨끗한 세계(淨土)로 새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 자비로운 마음으로 공경하고 서로 화합하여 모든 감각기관을 잘 다스리고 자식이 어버이를 공경하듯, 어미가 아들을 사랑하듯, 언어와 행동이 지극히 겸손
하다고 했다. 용화 세계는 탐욕으로 인한 약탈과 살육이 없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가득 찬 평화로운 세상을 말한다. 아울러 그곳에 사는 중생들은
사람들의 마음도 모두 평등해서 다 같은 마음이고, 그래서 만나면 즐거워해서 착하고 고운 말만 주고받는"『미륵하생경』
다면서 서로 따뜻한 정을 나누며 자비를 실천한다고 했다.
소유욕에서 벗어난 이상사회
경전은 탐욕에 의한 소유욕이 없는 이상적인 사회를 묘사한다. 온갖 금은보화가 온 땅에 흩어져 있어도 아무도 주워 가지 않는다. 오히려 "옛사람들이 이 보화 때문에 서로 해치고 죽이고 잡아가고 가두지 않았는가?"라고 말한다. 『미륵하생경』은 이 보화를 보더라도 기와나 돌로 여겨 탐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불교는 사회적 불평등과 모든 악이 탐욕에 의한 소유욕에서 비롯된다고 믿다. 『기세인본경』은 필요 이상의 재물에 대한 탐욕이 악의 근원이자 갈등의 근원이라고 말다. 『전륜성왕수행경』은 또한 기본적인 생활수준 이하의 극심한 빈곤이 도덕적 비열함으로 이어지고 사회적 안정과 평화를 파괴한다고 말한다. 미륵 세계를 다스리는 통치자는 소유욕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한다.
경전에 따르면, 이상 사회는 물질적 풍요와 나눔과 베풂의 사회적 실천을 통해 소유욕에서 벗어나는 것을 통해 달성된다. 물질적 풍요는 완전한 평등과 평화를 보장하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더 나아가, 이는 중생의 윤리적 실천을 통해 실현된다. 이 평화로운 세상은 중생의 자비로운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미륵의 새로운 세상은 중생의 도덕적 실천과 덕목 위에 굳건히 자리 잡는다. 즉, 이상 사회는 중생의 노력, 즉 사회적 참여를 통해 건설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비의 주체적인 실천
불교 진리 수행의 목적은 자비의 실천이며, 모든 중생의 이익과 위안을 얻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비의 실천이 고통을 없애는 것이다.
"모든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데 (단 한순간이라도) 게으르지 말라. 현세의 모든 대보살은 중생을 불쌍히 여겨 불도를 닦기 때문이다" 『묘법연화경』,「안락행품」
라고 하며 자비의 실천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불교는 자비로 모든 생명을 보호하라고 가르치며,
『문수보경』에서는 어떤 중생도 해치지 않고 불쌍히 여기는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자비는 불교 수행의 근본이다. 특히 『대지도론(大指度論)』 권 27에서는 보살이 중생들이 늙음, 병듦, 죽음 등 온갖 고통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큰 자비심을 품어 그들을 고통에서 구하고자 하며, 마침내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고자 마음을 정한다고 하였는데, 이 또한 자비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유마경』에서는 보살이 정토를 구하고자 하면
“마음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 마음이 청정해지면 불국토도 청정해진다.”
라고 한다. 정토는 바른 마음에서 시작된다. 정토는 진리와 함께 바른 법을 항상 수호하고 실천하는 삶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정의의 깨달음은 중생의 노력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승만경』에서는 더욱 적극적인 수행을 말한다. 고난에 처한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고 바르게 인도하겠다는 서원을 말하며, 중생의 악행을 강제로 끊어 버리고 굴복하게 하는 수단과, 그들을 포용하고 용서하며 보살피는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바른 법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절대적인 명제 위에 존재해야 한다.
『법화경』에서 보살마하살은
자비로써 몸을 닦아 부처님의 지혜[佛慧]에 잘 들어갔으며, 큰 지혜[大智]를 통달하여 피안에 이르렀고, 그 명성이 한량없는 세계에 널리 퍼져 무수히 많은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이들이라고 한다. 이는 부처의 세계, 즉 정토를 깨달은 수행자를 말한다.
경전을 통해 불교의 사회관을 살펴보면, 인간의 실존적 고통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현실적인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더 나아가 현실적인 고통을 극복하는 사성제(四聖諦)의 사회적 실천을 통해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다양한 실천이 확립된다.
불교의 사회 참여는 인류와 모든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는 길이라고 한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정토(眞淨土)'와 '현세의 부처국(現世之佛國)'은 이상적인 사회를 묘사하며, 경전의 대류는 마음을 정화하고 바꿀 때 비로소 세상이 변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승불교 보살은 자비의 수행을 통해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깨달은 수행자이다.
그들은 지혜와 자비, 즉 현실적인 고통에 대한 사회적 해결책과 더욱 자유롭고 행복한 해탈의 삶을 실천한다. 이러한 사회 실천이 바로 사회 참여이며, 그 길로 가는 큰 길이 우리 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