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기독교 신행의 현재
불교와 기독교는 2,000년 이상 이어져 왔으며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남극 기지에도 사원과 교회가 있다. 이 광활한 시공간 속에는 불교도나 기독교도로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의 종교적 관습 또한 다양하다. 때로는 하나의 전통 안에서도 완전히 반대되는 종교적 관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만 해도 천주교, 정교회, 개신교라는 세 가지 주요 전통이 있지 않는가? 초기 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주제를 정하지 못했을 때 어떻게 논쟁을 진행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학문적 입장을 고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지역, 시대, 인물, 또는 문헌별로 논쟁의 주제를 좁고 구체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적어도 석가모니 부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 수행의 차이, 니까야와 사복음서의 종교 수행의 차이, 또는 조계종과 천주교 공식 입문 교재의 종교 수행의 차이와 같은 것들이 그렇다.
기독교의 믿음과 실천
기독교는 “신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종교학자라면 자신의 종교 용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종교를 설명해야 한다. 다른 종교를 자신의 종교 용어로 설명하는 것은 종교학자에게는 금기이다. 이는 불교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어진 과제이기도 하므로, 우리는 그대로 따르겠다.
기독교의 신행, 즉 기독교 신앙과 실천은 믿음과 사랑, 즉 “야훼를 믿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을 위해 죽으셨다는 이야기”를 믿는 종교이다. 기독교인의 하나님은 야훼이며, 이 세상에 오신 야훼는 인간 예수님이다.
다시 말해, 기독교인들은 야훼 하나님이 인간 예수님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대신 죽으셨다고 믿는다. 죽음을 대신하는 그 죽음의 행위, 즉 속죄(희생자)가 바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셨듯이 인간도 사랑을 실천해야 다.
야훼(YHWH 또는 YahWeh)는 명사가 아니라 히브리어로 '나는 나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나는 누군가의 것이나 무언가, 혹은 누군가의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자, 자존하는 자다. 한국 기독교인 중 천주교는 야훼를 하느님으로, 개신교는 하나님으로 번역한다.
기독교인들은 야훼를 창조, 유일성, 역사, 인격성, 그리고 사랑이라는 다섯 가지 의미로 믿는다. 역사는 주권과 섭리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야훼가 인간과 세상을 창조하신 후, 단순히 뒤로 물러나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인류 역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훼가 인격적인 신이라는 것은 단순히 인간을 초월하는 신이 아니라, 인간과 차원을 공유하는 존재, 즉 인간의 언어로 인간과 소통하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을 위해 죽으셨다는 이야기이다. 야훼의 이 이야기를 믿는다면 구원은 성취된다. 구원은 속죄의 죽음을 통해 이미 성취되었다. 믿음으로 확인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구원은 인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야훼의 선물, 즉 은혜입니다.
새로운 야훼의 이야기는 구약 39권에, 인간 예수의 이야기는 신약 27권에 기록되어 있다. 기독교인들은 이 성경을 믿는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추구하는 신앙 공동체인 교회를 믿는다. 개신교인들에게 교회는 가톨릭이나 정교회 신자들보다 덜 중요하다. 가톨릭은 교회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반면, 개신교는 개인이 야훼를 직접 믿을 수 있으며 성경과 성령을 통해 구원을 믿을 수 있다고 믿는다.
기독교인의 실천은 오직 하나, 사랑이다. 그들은 야훼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 죽으셨을 때 보여주신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한다.
‘네가 받고 싶은 것을 남에게 베풀어라.’ ‘야훼께서 너를 사랑하신 것같이 야훼와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하는 덕과 사랑은 이처럼 단순하고 분명하다. 전자는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황금률이라고 불리고, 후자는 사랑을 실천하는 두 가지 방향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중 계명이라고 불린다.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덕목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야훼를 향한 사랑의 실천에는 예배, 기도, 세례, 계명, 순례 등이 포함되고,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에는 선교, 노동, 봉사, 기부 등이 포함된다. 그리스도인들의 사랑 실천은 여러 종교 중에서도 열렬한 것으로 유명하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
불교의 믿음과 실천
불교도는 부처, 부처의 가르침, 그리고 부처의 가르침을 믿는 공동체, 즉 승가를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초기 불교 시대의 부처는 깨달은 인간이었다. 부처는 진리를 깨달았고, 그 결과 해탈을 이루었다. 해탈은 죽음을 포함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는 위대한 자유의 성취이다. 그들은 모든 인간이 부처처럼 깨달음과 해탈, 즉 불성(buddhadhātu)을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대승 불교 개혁 운동 이후, 대승 불교도들은 부처를 초월적인 힘을 가진 신성한 존재로 믿어 왔다.
불교도는 승가가 공인한 경전과 그 안에 담긴 진리, 즉 부처의 가르침을 믿는다. 부처가 깨닫고 가르친 진리를 몇 마디로 요약하는 것은 쉽지 않다. 모든 존재와 현상에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으므로 어떤 존재나 현상도 소유되거나 영원할 수 없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소유욕을 품고 집착하면 고통만 있을 뿐이다.
이것을 깨닫고 집착을 버리면 대자유의 해탈(열반)을 얻게 된다. 선행을 하고 덕을 쌓으면 이생뿐만 아니라 내생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악행을 하고 업을 쌓으면 불행하게 산다는 것을 믿는 것도 중요하다. 승가의 승단은 불교도들이 따라야 할 본보기이자 신앙의 대상이기도 하다.
불교도는 지혜를 얻고 자비를 베푸는 수행을 한다. 지혜는 부처처럼 해탈한 위대한 자유인이 되는 수행이며, 자비는 타인과 세상을 해탈하도록 돕는 수행이다. 전자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계율을 지키고, 마음을 고요히 집중하며, 연기(緣起), 사성제(四聖諦), 삼법(三法), 업(業), 윤회(輪廻) 등의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자비는 타인과 세상에 물질적 재물, 가르침, 위로, 위안을 베푸는 수행이다. 불교도는 세상 사람들과 고통과 행복을 나누고 함께하는 수행을 한다.
불교의 구체적인 수행 방식은 초기 불교와 대승 불교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 불교의 수행은 주로 계율, 집중, 가르침에 대한 이해, 즉 자신의 해탈을 위한 수행이었다. 초기 불교도 자비를 수행했지만, 이는 해탈을 위한 자기 수행의 덕목이었다. 대승 불교 시대의 불교 수행은 자비에 집중되었다.
대승 불교의 수행은 수행을 위한 자비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희생으로서의 자비를 제1덕목으로 삼는 것이다. 초기 불교의 삼덕 외에도 보시가 최우선 순위가 되었고, 인내와 근면이 더해져 육행으로 압축되었다. 예배, 공양, 기도, 주문, 사찰, 순례 등 다양한 수행법이 발전했고, 자비의 수행은 보시, 중생 해탈, 봉사, 공양으로 구체화되었다.
차이점과 공통점
불교와 기독교의 수행 방식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수행과 신앙이다. 전자는 인간의 잠재력을 믿고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해탈을 추구하지만, 후자는 피조물인 인간의 무능함과 야훼의 절대적인 힘을 믿고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려 한다. 불교도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스스로 수행하지만, 기독교인에게는 그것이 원죄, 즉 신성모독이다.
창조주를 믿지 않고 인간을 피조물로 믿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기독교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는 주인과 종, 아버지와 아들, 왕과 신하의 관계이다. 후자가 전자를 따르지 않으면 죄인이 된다. 지난 40년 동안 제가 만난 많은 기독교인들이 불교에 대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점은 불교도들이 매 순간 목격하는 흠투성이인 인간을 믿는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불교도들이 진리, 즉 다르마를 믿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법과 원칙은 인간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들은 야훼를 인격적인 신이자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신으로 믿는다. 그들의 야훼는 사랑을 주시고 정의를 세우시는 역동적인 신다. 반면 불교는 인격적인 존재가 영원하지 않으며 오직 이법(理法)만이 영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불교는 인간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기독교인에게 인간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오직 신만이 진리를 계시해 줄 수 있다. 불교는 성찰의 종교이고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다. 불교는 인간의 노력이 해탈을 성취해야 한다고 믿는 반면, 기독교는 구원이 이미 선물로 주어졌다고 믿는다.
불교와 기독교의 자비와 사랑이라는 수행은 표현은 다르지만 그 내용은 같다.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두 종교 모두 자신을 내어드려야 한다. 불교는 무아(無我, anātman)를 깨닫고 자신을 내어드리는 반면, 기독교는 야훼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고 자신을 내어 드린다. 그리고 두 종교 모두 타인과 세상에 자신을 바친다. 이것이 두 종교의 가장 큰 공통점이다.
불교와 기독교라는 두 위대한 종교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몇 페이지 안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유사점을 말하는 것도, 차이점을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이념이 달라도 실천이 같으면 같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실천이 같더라도 이념이 다르면 다르다고 한다.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보다도 사람과 세상을 행복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