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 과정에 번뇌가 끼어드는 것 알아차릴 수 있다
붓다는 마음이 어떻게 생성되고 작동하는지 그 원리를 훤히 꿰뚫어 보고 번뇌의 마음을 열반의 마음으로 바꾼 마음 공학자였다. 마음은 뇌의 영역이기에 그는 위대한 뇌과학자이기도 했다.
붓다는 마음 공간에 마음 거울(意根, mano), 식(識, 알음알이, vinnana), 기억 이미지, 사띠(알아차림)가 있고 이들의 유기적 작동에 의해 마음이 일어남을 알았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 순수한 이미지로 마음 거울에 맺힌 상을 왜 '있는 그대로' 마음 공간에 현현(顯現)시키지 못하고 번뇌로 오염시킬까? 범부의 기억 이미지는 번뇌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번뇌로 오염된 기억 이미지는 번뇌의 마음으로 현재의 인식 대상을 보게 한다.
그렇게 경험한 대상은 번뇌가 낀 채로 다시 마음 공간에 저장되고,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된다. 번뇌의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다행히 마음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인식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사띠(알아차림)가 있다. 사띠는 인식 과정에 번뇌가 끼어 들어가는 것을 알아차림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띠는 성(城)의 문지기와 같다고 했다. <낑수까나무 비유경>
문지기는 지혜롭고 슬기롭고 현명해 번뇌가 마음 공간에 끼어들지 못하게 한다.
알아차림의 대표적 수행이 호흡 알아차림
사띠힘을 키우면 마음 공간에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효율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사띠힘을 키우는 마음 운동이 사띠 수행이고, 그 대표적인 것이 호흡 알아차림 수행이다. 또한 신기하게도 사띠 수행을 하면 번뇌 그 자체가 약화되고 궁극에는 사라진다. 고타마는 그렇게 수행해 부처가 되었다. 사띠 수행은 사띠를 반복하는 마음 운동이다.
호흡을 도구로 삼아 알아차림을 반복한다. 아령 운동을 하면 팔근육이 생긴다. 조깅을 반복하면 달릴 수 있는 능력이 늘어남을 알 수 있다. 팔뚝에 생기는 근육은 눈으로 볼 수 있고,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고 힘도 덜 드는 것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육체 운동은 노력의 효과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효과를 확인할 수 있으면 재미있고 더 노력한다. '알아차림 근육'도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은 두개골 속 뇌에 있어 볼 수가 없다. 게다가 불교 수행(호흡 수행)은 힘들고 지루하다.
알아차림 마음 근육의 효과를 뇌과학으로 보다
불교 수행은 무덤덤함의 연속이고 어쩌면 지겨움과의 끈기 싸움이다. 끈기 있게 무던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덧 나의 수행에 진전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 불교 수행이다. 그래서 밝은 스님들은 '수행은 콩나물에 물 주기와 같다'라고 하신다. 수없이 반복하는 알아차림이 아무런 효과 없이 지나가는 것 같지만, 그것이 나의 수행을 진보시킨다.
마치 콩나물에 주는 물이 거의 전부 흘러 지나가지만 몇 방울의 물이 콩나물을 키우듯, 힘들고 지루하더라도 효과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끈기 있게 할 수 있다. 불교 수행을 뇌과학으로 이해하면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대한 첫 번째 답이 여기에 있다. 뇌는 역동적으로 변하는 성질, 즉 '가소성(可塑性, plasticity)'이 있어 알아차림을 계속 반복하면 알아차림 뇌가 강해진다.
알아차림 마음 근육이 강해지면 번뇌가 제거되고 열반을 증득할 수 있다. 그런 마음 운동이 불교 수행이고 뇌과학은 그 효과를 확신시킨다.
불교의 가르침을 명료하게 이해하려는 뇌과학
불멸 후 부파불교는 인식 과정을 철저히 해부했다. 인식 과정의 '17 찰나설'이다. 끊임없이 몰두해 인식을 지속하는 것 같지만, 17 찰나씩 끊어서 인식한다. 한 번 인식하는데 17개의 마음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면서 대상을 인식한다고 한다. 1 찰나 (1/75초) 사이에 하나의 마음이 일어났다가 사라짐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를 증명하는 뇌과학적 증거는 무엇일까? 후대 유식불교는 8가지 알음알이(識)가 있다고 한다. 붓다의 6식(六識)에 제7 말나식(末那識)과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더했다. 번뇌를 일으키는 말나식과 마음 종자(種子)들의 집합인 아뢰야식은 무엇이며 뇌의 어디에 있을까?
어떤 마음이 있다는 것은 그런 마음을 창발 하는 뇌가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뇌과학적 진실이다. 번뇌는 어떤 뇌이며, 사띠 수행은 어떻게 사띠힘을 키우고 번뇌의 마음을 제거할까? 전부 뇌과학의 영역이다. 뇌과학으로 불교를 이해하면 불교의 가르침이 보다 명료하고 그 수승함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 뇌과학 연구가 불교 수행에 도움을 주는 두 번째 이유이다.
광유전학과 마음 연구의 미래
첨단 뇌과학과 전자기 기술의 결합으로 출현한 기능적 자기 공명영상(fMRI)이나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과 같은 첨단 장비는 특정한 마음이 뇌의 어떤 부위와 연관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뇌파검사(EEG)로 뇌의 활동을 밀리초 단위의 분해능으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장비의 등장은 수행의 뇌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수행의 결과로 뇌가 어떻게 변하는지도 보여준다. 보다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광유전학(光遺傳學, Optogenetics)은 유전공학과 전기신경생리학적 방법의 융합이다. 특정 뇌 부위, 뇌신경세포들의 활성을 인위적으로 조절해 어떤 마음과 행동을 만드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아직은 동물 모델에 적용되고 있지만 머지않아 사람 마음의 연구에 이용되면 마음 연구는 획기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불교 수행자들에게 감동과 신뢰를 주는 뇌과학
뇌과학의 발달은 추상학적이던 마음을 뇌라는 구체적 물질로 이해하게 했고, 이는 그대로 불교 수행에 적용된다. 불교는 마음 과학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교 수행을 하는데 뇌과학을 알아서 뭐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붓다 이래 오랜 세월 불교 수행은 뇌과학과는 전혀 관계없이도 면면히 잘 장엄(莊嚴) 되어왔다.
불교 수행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불교에서 유래했지만 스트레스 감소와 건강 증진을 주된 목표로 하는 명상에는 재미를 가미해 많은 대중이 접근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마음 깊이 파고들어 깨달음을 증득하고자 하는 불교 수행의 길은 멀고 험난하다.
바로 이 지점에 뇌과학이 교차하며 궤(軌)를 같이 한다. 불교 수행에 대한 뇌과학 연구는 불교의 가르침을 보다 명료하게 하고, 감동과 신뢰를 얻게 해 수행에 추진력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