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르마의 법칙과 무의식, 그리고 윤회 환생 - 백두산 암반수(巖盤水)
카테고리 없음 / / 2025. 3. 28. 16:56

카르마의 법칙과 무의식, 그리고 윤회 환생

 

카르마의 법칙

카르마의 법칙

다른 차원의 질서(카르마의 법칙)를 사람의 언어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궤도에서 벗어난 영혼을 본래의 길로 이끌 수는 있다. 그러려면 그 영혼이 '우주의 존재 법칙'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간다. 

 

 마찬가지로 영적 어려움에 처했을 땐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봐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가 자신의 영적 결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 문제가 던져주는 영적 숙제에 다가갈 수 있다. 

 

 카르마의 법칙은 잘못을 바로잡는 데 진정한 목적이 있다. 말하자면, 책을 출판하기 전 편집자가 원고 중 잘못된 부분을 교정해 바로잡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카르마의 법칙은 결코 무자비한 징벌이 따르는 복수의 개념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한 영혼에 대한 교육이자 모자란 부분에 대한 보완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그러한 영적 교훈을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 

 

 자연산 진주는 조개 안에 들어온 이물질로부터 만들어진다. 이물질을 진주층으로 감싸 조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영혼은 스스로 '업의 이물질'을 우리 영혼 속에 넣었는지도 모른다. '영혼의 진주'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사람들의 영혼은 자신이 지은 카르마(업業)를 해결하고 정화하기 좋은 시기에 다시 태어난다. 자신이 세운 영적 계획과 목적에 맞는 부모를 선택해서 온다는 이야기이다. 그 계획과 약속은 우리의 무의식에 더 많이 저장되어 있다. 그러므로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전생의 삶)를 알아야 지상에서 삶의 본질을 알 수 있다. 태어남과 살아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나 심리학자는 무의식을 '각성되지 않은 심적 상태'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지각 작용과 기억 작용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나아가 의식과 무의식은 서로 상응하는 연속적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의식의 심층에 무의식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표면 의식으로 생각하고 사유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의식 속에는 의외로 무의식의 간섭과 작용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보통 학습하고 익힌 지식으로 일상을 살아간다. 학교 공부나 상식 등이 그 좋은 예이다. 그 지식을 응용해 의식적 사고를 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의식적 사고로 자아를 바라보며 살아왔다. 학습과 경험으로 터득한 지식은 의식의 영역에 입력되어 삶의 방향타 역할을 한다. 

 

 "의식은 무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존 바그 John Bargh는 저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Before You Know It>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정한 자기는 의식과 무의식 모두에 해당하므로 둘 다 알아야 자신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무의식이 우리의 감정과 생각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아야 한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신이라는 존재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박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구분은 끈질기고 집요한 착각에 불과하다"

라고 말한다. 21세기의 정신분석학은 세포의 생명 질서를 현상의 무의식으로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존재의 이유와 삶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동양의 어떤 전통에서는 여섯 번의 험난한 생을 헤치고 나아가야만 일곱 번째 생에서 비로소 그 영혼에게 한 번의 편안한 생이 허용된다고  말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6일을 수고하고 하루를 쉬는 안식일과 같은 개념이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여섯 번째의 고단한 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분명 다음 생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편안한 안식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무의식이 우리를 지배한다

 자신도 알 수 없는 어떤 마음의 갈등이나 분노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 왜 그럴까? 어린 시절 성장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성인이 된 이후, 어느 날 겪은 충격이나 쇼크 때문일까? 우리 주위에는 그 원인도 모른 채 평생 무겁고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현대인의 50퍼센트 이상이 정신질환이나 크고 작은 스트레스, 만성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우리의 세상살이는 늘 세찬 바람이 불고 고달프다. 그 밑도 끝도 없는 일상에 부대끼다 보면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기 마련이다. 또한 그러다 보면 무력감과 상실감에 허우적거리게 된다. 급기야 그런 부정적 정서가 지속되면 가장 가까운 가족 관계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나아가 사회는 자학적 충동 인물이 많아지고, 그로 인해 범죄가 끊이지 않게 된다. 

 

 보통 인간의 부정적  정서는 무의식에서 비롯된다. 어떤 무질서한 충동이 무의식에 쌓이고, 그것이 나도 모르게 현재 의식에 작용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화되지 않은 무의식이 현재 의식에 많이 작용하면 할수록 부정적 심리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런 무의식이 우리 감정(생명)의 주관자일 때 자신이 가진 삶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가 내세운 '충동의 무의식'이나, 자크 라캉 Jacques Lacan과 카를 구스타프 Carl Gustav Jung이 말하는 '상징의 무의식'이 바로 그런 개념이다. 보이지 않는 무의식이 현재 의식을 조종하는 절대적 지배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여기서 말하는 무의식 현상은 몸과 자아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생명의 몸부림일 수 있다. 

 

 상처로 온전함을 잃은 어떤 사람이 원래 삶의 질서를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인 것이다. 또한 이때의 무의식적 사고는 그 사람이 '전생에서 만들어낸 심상心想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윤회 환생이란 무엇인가

Alex Grey (1953~ ) 작품 &amp;#39;The Soul Finds It&amp;#39;s Way&amp;#39; Alex Grey (1953~ ) 작품 &amp;#39;Eco-Atlas&amp;#39;

 과연 우리의 영혼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우리가 전생에 대한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전생을 알면 삶의 본질에 대한 이해의 폭이 한층 넓어지고, 우리가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전생이 주는 영적 메시지는 우리가 이번 생에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숙제를 내고,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 영혼이 육신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윤회와 환생의 사이클에 따라 끊임없이 발전하고 진화해 간다는 뜻이다. 

 

전생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각자 영혼의 계절을 가지고 태어난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찾아오듯 전생은 현생으로 이어지는 통로의 의미가 있다. 우리 영혼은 자신이 살았던 전생의 삶을 교정하고 보완⦁수정하기 위해 다시 태어난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쌓은 전생에서의 선행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태어나기도 한다. 

 

 그 긍정의 힘으로 자신의 영적 성장을 이루어나가고, 혹시나 남아 있는 부정적 에너지를 정화하는 것이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해 무성했던 초록이 겨울이 되면 낙엽이 되어 사라진다. 그러나 그 뿌리는 봄이 오면 다시 돋아나 푸른 잎으로 재생되듯이 인간의 삶도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우리가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면 우주는 그에 대한 반작용(진자운동)을 일으켜 (영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원리로 우리의 생각과 행위가 그 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그 개념이 바로 '카르마'이다. 다시 말해, 원인과 결과의 복합적 상호작용을 통해 모든 불완전함이 해소될 때까지 환생의 과정은 끝없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씨 뿌린 대로 거두리라" 같은 <성경> 구절도 결국 카르마의 작용을 달리 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 중에는 수백수천 생을 살았던 영혼을 가진 사람도 있다. 불경佛經에 따르면 부처님은 2만 5,000년 동안 550 생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에 올랐다고 한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완성된 자아, 완벽한 성취의 단계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그 완성의 지점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윤회 환생을 통해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그 완성의 단계에 이르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 

 기독교에서는 천국에서 태어나 천사와 같이 산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중생들이 사는 고해苦海를 벗어나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없는 서방정토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완전한 성취 단계에 이른 신적인 인간, 즉 다른 존재의 영역으로 진입한 신인神人에 대한 전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전설을 살펴보려면, 인류가 신성한 근원에서 멀어지기 이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까마득한 과거에는 물질적 세계로부터 진보해 신성한 존재의 영역으로 들어간 인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켈트족 국가의 전설적 믿음 The Fairy-Faith in Celtic Countries>이라는 책을 펴낸 에번스 웬츠 W. Y. Evans Wentz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신이란 언젠가 한 번은 인간으로 살았던 존재이며, 진정한 인간은 언젠가 신이 될 것이다. 인간은 신성하고 불가시적인 세계와 맞닿아 있다. 짐승들이 인류의 존재 영역과 맞닿아 있듯이. 

 

 우리의 영혼이 진화해 다른 높은 차원으로 가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일상의 삶에서 선한 마음으로 봉사와 선행을 베푸는 일이다.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양보도 선행이다.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것도 선행이다. 어떤 이해관계를 떠나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를 갖는 마음 또한 선행이다. 아침에 하는 기도도 선행을 하기 위한 준비 도구가 된다. 

 

 잠들기 전 하루의 잘못을 반성하고 참회하는 것도 다음 날 선행을 하기 위한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다. 어떤 이익도 전제하지 않는, 조건 없이 베푸는 마음이 바로 선행의 기본이다. 살아생전에 '사후 장기 기증 서약'을 하는 것도 큰 선행이다. 

 

 얼마 전 어느 학생들의 선행이 알려져 훈훈한 미담이 되었다. 한 학생은 길을 잃은 치매 할머니를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인도했다. 그리고 또 다른 학생들은 횡단보도에서 넘어져 다친 할아버지를 돕기 위해 용돈을 모아 병원 치료를 받도록 했다. 학생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는 순간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생각났고, 그 마음으로 그분들을 도왔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어렵고 불편한 처지에 있을 때, 누군가 자신이 한 것처럼 그렇게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 말이다. 평범하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닌 학생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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