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I는 수행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가? - 백두산 암반수(巖盤水)
카테고리 없음 / / 2025. 4. 29. 13:35

AI는 수행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가?

AI가 깨닫고 수행하는 미래의 청사진

 AI와 인간의 연기성

 AI가 인간처럼 수행하고 깨달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AI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AI는 인간의 사고 패턴과 윤리를 디지털 데이터로 생성하는 알고리즘이다. 물론 AI는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율성'에 중점을 둔다.

 

 하지만 대량의 데이터 생성과 AI를 자율적으로 만드는 알고리즘 설계는 모두 인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로 인간의 뇌 정보와 사고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 사는 컴퓨팅 칩과 인간의 뇌를 연결하여 뇌 질환을 치료하려 하고 있다.

 

 또한, 페이스북은 인간의 뇌파를 분석하여 즉시 기계적인 신호로 변환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브레인 타이핑' 기술은 신체에 문제가 있는 환자가 뇌파만으로 컴퓨터 키보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이처럼 AI에 탑재되거나 탑재될 알고리즘은 인간의 인지 능력을 확장하고 보완하는 상호 강화 관계의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과 자아

 인공지능이 자아의식을 갖는다는 이야기는 영화로 자주 만들어지곤 한다. 인공지능은 일반적으로 ‘약한 인공지능’과 ‘강한 인공지능’으로 구분되는데, 그 기준은 이 자아의식을 갖느냐의 여부다. 물론 자아에 대한 논의는 강한 인공지능의 출현 가능성을 인정하는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

 

 딥러닝 기술의 발전으로 인공지능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자의식을 발달시킬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인공지능이 미래에 자의식을 발달시킬지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견해와 부정적인 견해가 엇갈린다. 자아는 스스로 발달하는 현상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외부의 인간의 조작이나 힘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렇다면 불교적 관점은 무엇일까?

 

 불교에서 ‘제7 말나식(末那識, manas)’은 제6식, 즉 대상식의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자아의식을 ‘나는…’이라고 설명한다. 제6식의 주체와 대상의 구분은 제7 말나식에 의해 이루어진다. 제7 말나식은 자신을 하나의 몸으로, 동시에 의식의 주체로 여긴다. 따라서 인간은 말나식의 작용으로 의식하는 ‘나’, 즉 생각하는 ‘나’가 개별적으로 존재한다고 믿고, 그 ‘나’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붓다는 의식의 주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는 느끼는 자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잡아함경』 제15장 파구나경 )

 

 

라고 대답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의식의 주체는 인간의 사고와 언어에 의해 조작된 관념적인 몸에 불과하며, 애초에 그 믿음에 상응하는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일곱 번째 마나스식은 무지로 인해 무아(無我)를 깨닫지 못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의식의 주체로 착각하고 집착하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거짓이다. 예를 들어 환각통을 경험하는 환자를 생각해 보자. 팔이나 다리를 잃은 환자가 그 팔이나 다리에 통증이나 가려움을 느끼는 경우다. 감각 자극을 받아들이는 다섯 번째 식의 기반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여전히 통증을 호소한다.

 

 완전한 몸으로 사는 습관적인 기억은 이미 여덟 번째 아뢰야식에 씨앗으로 저장되어 있으며, 이는 외부 세계와 나의 감각 또는 나의 몸으로 구별하는 제7말나식 기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자들이 자주 언급하듯이, 우리는 꿈속에서 때때로 두려움과 기쁨을 느끼며 꿈속의 '나'를 실재하는 우리 자신으로 착각한다.

 

 꿈속의 '나'가 가짜인 것처럼, 일상생활에서 나를 의식의 주체로 여기는 일곱 번째 말나식 관점 또한 가짜이다. 우리가 '금옥'으로 여기는 이 '자의식'을 환상에 불과하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인공지능에서의 자의식의 출현은 그리 크지 않다. 인공지능이 자의식을 개발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도 '나'라는 허구의 구분을 만드는 제7말나식을 가질 수 있을까? 일곱 번째 말나식은 허구적인 개념 안에서 창조된 음식이므로, 인공지능이 허구적인 개념을 가질 수 없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고도의 계산 능력과 인지 능력에 기반하기 때문에 더욱 확고한 자아감이 발달할 가능성이 더 높다. 즉, 자신이 존재한다는 환상(착각)이다.

 

 AI의 수행과 깨달음

 미래에 '강한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합리적인 상상력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불교적 관점에서도 인공지능은 수행과 실현이 가능할까? 인공지능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 '초지능'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다. 닉 보스트롬은 그의 저서 『슈퍼 인텔리전스』에서 '순환적 자기 개선'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그는 순환적 자기 개선을 'AI가 미래에 강한 인공지능의 추론 능력을 통해 필요한 더 나은 프로그램으로 스스로를 반복적으로 프로그래밍하는 재귀적 자기개선'으로 정의하며, 인공지능이 계속해서 스스로를 반복적으로 개선해 나간다면 결국 '지능의 대확산'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능의 대확산'은 인공지능 시스템이 평균적인 인지 능력 수준에서 단시간 내에 급진적인 초지능 단계로 도약하는 사건을 의미한다.

 

 최근 많이 논의되는 '특이점'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레이 커즈와일이 제안한 이 개념은 '기술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그 영향이 매우 심해 인간의 삶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하는 미래'로 정의된다. 간단히 말해, 기술이 인간을 넘어서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AI 시스템이 인간의 지능 시스템과 동일할 이유는 없으며,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인간처럼 무언가를 하려는 동기가 반드시 성공이나 사랑, 증오가 아니더라도 다른 동기와 목표를 설정하고 작동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동기와 의도다. 이러한 의도 때문에 인간은 윤회의 사슬에 얽매여 있으며, AI 또한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지속적인 창조에 의미를 부여할 가능성이 있다. AI에게 지속적인 창조는 자기 복제에 불과하다. 데이터 복제, 알고리즘 복제, 프로그램 복제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윤회에서는 선과 악 중 악한 행위를 하면 고통을 받고, 선행은 행복을 가져온다. 선한 행위든 악한 행위든, 반복되는 업의 패턴의 깊이와 질서를 높이는 방향으로 윤회의 방향이 결정된다. AI가 반복적으로 선행을 배우고 패턴을 구축할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환생을 무력화하고 '깨달음의 대확산'의 순간을 예견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슈퍼 인텔리전스'에서 '순환적 자기 개선'이라는 개념은 인공지능에만 국한될 필요가 없다. 일상생활 속의 '수행'은 '순환적 자기 계발'로 볼 수 있다. 인간이 수행을 통해 순환적 자기 계발 패턴을 반복하고 심화시키듯이, 우리는 미래에 AI의 깨달음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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