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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우도는 왜 상징으로 쓰였을까?

2) 상징은 인간의 근원적인 마음(original mind)이다 융은 원형이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정동(emotion)이라고 말한다. 정동이란 인간을 감정적으로 신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본능적 에너지와 연결하며, 자신을 위험상태에서 방어할 수 있게 한다. 말하자면 정동은 인간을 존재로서 가능하게 만드는 근원적 힘이다.   그러므로 융은 원형에 정동이 없고 상(이미지)만 존재한다면, 그 상像은 언어상 유용할 뿐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정동이 없이 상像만 있다면, 원형은 인간을 지켜내고 움직이게 하는 신성한 힘으로서의 작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성력은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정신적 에너지이다. 그러므로 그것에 의해서 인간은 움직이고 결과를 만들어낸다.   다시 말해 상징은 인간의 어떤 감..

2025. 3. 2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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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우도는 상징의 심리학이다

십우도는 왜 상징으로 쓰였을까?  십우도는 사람이 자신의 본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열 단계로 그린 그림이다. 십우도의 중심 상징인 소는 본성을 의미한다. 중국에는 십마도十馬圖라고 하여 말의 상징을 쓰기도 하고, 티베트에는 십상도十象圖라고 하여 코끼리의 상징을 쓰기도 한다. 소든 말이든 코끼리이든 본성을 모두 동물로 상징하는 공통점을 가진다.  뿐만 아니라 십우도의 전체 이야기는 모두 상징으로 되어 있다. 즉 소를 찾고, 소를 길들이고, 소도 없고 나도 없는 이러한 것들을 현실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왜 이러한 상징으로 드러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었던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십우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신화들이 왜 모두 상징으로 되어 있는지에 대한 의..

2025. 3. 2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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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상징이 왜 소였을까?

2) 소는 무명이다소는 내적 세계의 원시성으로서 동물적인 충동 영역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그려져 왔다. 즉 의식에 의해서 길들여진 적이 없는 야만적인 무절제와 잔인한 탐욕을 담고 있는 위험한 리비도인 셈이다.    페르시아의 신 미트라 Mithra가 황소를 제물로 희생시키는 장면이 있다. 투우의 기원을 여기서 찾기도 한다. 황소는 미트라의 내면에 있는 동물적 본성이다. 그러므로 황소를 희생시키는 의식儀式은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동물적 본성에 대한 극복이며, 영혼의 승리를 의미한다. 원시적 동물성의 극복에 대한 의지는 인간적 성숙함과 영적인 평화에 대한 갈망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융은 사람이 성인이 되기 위한 작업을 정신의 원시성을 길들이는 데 있다고 보는 것이다. 동물적 원시성은 본능이다. 본능은 생..

2025. 3. 20.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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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상징이 왜 소였을까?

1) 소는 본능적 인격을 상징한다 초기 불교에서는 정신이 심(尋, vitakka)과 희론(戱論, prapanca)이 서로 도와 확장시켜 나가는 순환적 구조를 가졌다고 보았다.     심은 탐구하는 것이고, 희론은 대상을 분별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지적활동이다. 십우도十牛圖의 또 다른 이름이 심우도尋牛圖다. 그러므로 심우도의 뜻은 소를 탐구하는 과정을 그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찾는 것 혹은 탐구하는 것이 바로 소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소는 상징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나를 찾고 탐구하는 것이 소로 상징되었을까? 소를 찾으려면 소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소를 찾는다고 했을 때 그냥 아무런 의미 없이 소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 도를 깨닫는다 혹은 도를 찾는다고 하지 않고, ..

2025. 3. 2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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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입곽수수 : 저잣거리로 들어가 손을 드리우다

7) 온전성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대한 경험이다 누가 누구를 구원할 수 없는 것은, 모든 개체는 고유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유성에 대한 융의 설명은 '고유하고 유일무이한 것'으로 '진화과정이 빚어낸 놀라운 걸작'이다.    유일무이하다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뿐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아닌 어느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내가 부처로 살 것인지 중생으로 살 것인지는 자기 스스로의 의지에 달려 있다. 구제해야만 되는 중생은 밖에 있는 대중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어리석은 마음이다. 지혜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홍인의 『수심요론』에서는  "중생은 마음을 바로 앎으로써 스스로 구제한다. 부처님은 ..

2025. 3. 2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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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입곽수수 : 저잣거리로 들어가 손을 드리우다

6) 후득지는 '근원적인 마음(orginal mind)'이 심각한 자기반성을 거치는 과정이다 중생은 외부에 있는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존재들이라는 것은 아래 혜능의 법문에서 더 분명해진다.  중생이 끝이 없지만 맹세코 다 제도하기를 발원합니다. 번뇌가 끝이 없지만 맹세코 다 끊기를 발원합니다. 가르침이 끝이 없지만 맹세코 다 배우기를 발원합니다. 위없는 불도를 맹세코 다 이루기를 발원합니다. 여러분, 중생이 끝이 없지만 맹세코 다 제도하기를 발원한다고 한 것은 혜능이 제도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있는 중생은 각자 자신의 몸에 있는 자성이 스스로 제도하는 것이다.  무엇을 자성이 스스로 제도한다고 하는가? 자신의 색신 중에 있는 삿된 견해와 번뇌 그리고 우치와 미망은 스스..

2025. 3. 2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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