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두산 암반수(巖盤水) - 백두산 암반수(巖盤水)
백두산 암반수(巖盤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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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인우구망 : 사람과 소를 모두 버리다

2) 원은 순환이다 대승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큰 수레다. 수레는 바퀴와 원의 상징이 담긴다. 융의 표현대로 공(空)은 모든 내용을 담고 있는 하나의 전체성을 나타내듯이, 대승은 어느 것을 선별해서 태우는 작은 수레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태울 수 있는 큰 수레다. 대승大乘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개인의 해탈解脫에 주력하는 소승小乘에 대對한 것이라는 표면적 의미를 제외한다. 그러면 그 본질적 의미는 내적內的•정신적精神的인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즉 대승은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익 또는 일에 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사로움은 자아의 성향이다. 그러므로 대승은 자아를 초월하는 것이고, 자아의 초월이 바로 무아無我다. 즉 무아가 바로 대승인 것이다. 소승이 밝음, 도덕성, 선함..

2025. 3. 1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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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인우구망 : 사람과 소를 모두 버리다

1) 원圓은 불성佛性이자 단일성의 상징이다여덟 번째의 인우구망人牛俱忘에는 붓으로 원圓 그림이 그려져 있다. 둥근 모양(圓形)의 속이 텅 비었기 때문에 공空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원은 일반적으로 온전하고 원만하다는 의미로 쓰이고, 공은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전체성의 의미를 지닌다.   공(空)은 모든 내용을 담고 있는 하나의 전체성이다. 헛된 투쟁으로 인해 무기력하게 되었던 삶이 그것을 통해 다시금 가능하게 된다. 쿤달리니 요가에서 '녹색 모태'란 잠재 상태로 있다가 출현한 이슈바라(Ishvara : 주님, 시바Shiva신에게 부여한 칭호)를 지칭한다.    공(空)은 원에 대한 상징이다. 원은 즉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공空이 곧 색色이다. 색色은 곧 무無다. 그러므로 무는 아무것도 없는 무가 아니라 가득..

2025. 3. 1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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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망우존인 : 소를 버리니 그대로 사람이다

2) 의식의 정점에 이르다태양의 상징성에 대한 설명은 연금술사들에 의해서 상세하게 밝혀진다. 연금술사들은 불꽃을 범심혼汎心魂 혹은 우주혼과 같은 정시적 성질로 받아들였다. 또한 불꽃은 무의식의 혼돈 속에 뿌려져 있는 인간의 이성이기도 하다. 해와 달은 자연의 빛으로서 자기(Self), 곧 부처를 상징한다.  자연의 빛인 자기(Self)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 인간의 의식은 그것에 의해서 밝아지고, 무의식의 어둠도 밝혀진다. 그것에 의해서 삶이 비치지만 인간이 그것을 마음대로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물도 물론 이 빛을 가지고 있지만 그 빛은 불완전하다. '완전한 자연의 빛'은 오직 인간에게 있다. 인간이 모든 생명체 중에서 가장 우수한 존재가 되는 이유도 '완전한 자연의 빛'을 가지고..

2025. 3. 1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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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망우존인 : 소를 버리니 그대로 사람이다

1) 모든 인위적 노력을 멈추다 제 7 송 : 망우존인忘牛存人騎牛已得到家山  (기우이득도가산)牛也空兮人也閑  (우야공혜인야한)紅日三草猶作夢  (홍일삼간유작몽)鞭繩空頓草堂間  (편승공돈초당간)소를 타고 이미 고향에 도착하였으니소도 공空하고 사람까지 한가롭네.붉은 해는 높이 솟아도 여전히 꿈꾸는 것 같으니채찍과 고삐는 띠집 사이에 부질없이 놓여 있네.  소를 잊으니 그대로 사람이다. 즉 소를 찾고자 했던 자아의 상대의식이 초월되는 지점이다. 상대의식의 분별이 사라지면 소가 바로 소를 찾아다닌 바로 그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소와 자신이 하나임을 아는 그것이 바로 정신의 고향이다.  부처와 중생을 나누는 자아의 상대의식으로는 중생을 버리고 부처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그러나 자아가 초월되면 인..

2025. 3. 1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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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우귀가 :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4)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되다騎牛迤邐欲還家 소 타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가노라니 소를 탄다는 것은 의식이 주도권을 가지고 무의식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의식을 인식함에 있어서 의식의 주도는 아주 중요하다. 만일 의식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의식화 되어버린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정신의 분열이고 의식의 파멸이다. 그러므로 소를 타고 소를 길들이는 의식의 기능은 무의식을 탐험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이다. 이미 잘 구축된 자아구조에 의해서 의식은 전혀 다른 법칙을 가진 무의식의 구조로 말려들어가지 않는다. 즉 '의식된 의지'를 가진 주체가 무의식에 순응하여 무의식이 이끄는 데로 가기는 하지만, 여전히 상대의식으로서 무의식을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식이 자신의 영역을 지..

2025. 3. 15.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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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우귀가 :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2) 진정한 삶은 의식할 때라야 가능하다'"삶을 그냥 그 자체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의식할 때라야 진정한 삶이 된다."   자아를 희생한다는 것은 자아가 더 이상 인식의 주체로서 있지 않다는 의미다. 즉 자기 자신을 인식함에 있어서 자아의 개입에 의해서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자아가 초월되면 의식만이 남는다. 자아의 틀을 벗어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의식한다.  자신에 대한 의식은 내면의 그림자를 구체화하는 일이다. 자아의식에 의해서 본능적인 욕망의 감정들이 열등한 성질로 분류되어 무의식 층에는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와의 만남은 무의식과의 화해이며 자기 자신과의 화해다. 또한 이것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관문이다.   그때 우리는 동물들에 의해 '물리게' 된다. 다시 말해 무의식의 동물적 충동에..

2025. 3. 14.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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