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두산 암반수(巖盤水) - 백두산 암반수(巖盤水)
백두산 암반수(巖盤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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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으로의 재탄생과 희생

3) 십우도는 재탄생 상징이다 대부분의 영웅들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에게서 버려지고 양부모에 의해서 자라는 내용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즉 영웅은 낳아준 어머니가 있고, 길러준 어머니가 있게 된다. 태어나게 하는 어머니는 육체적 삶을 주는 현실적 어머니고, 길러주는 어머니는 정신적 삶을 주는 상징적 어머니다. 양육하는 어머니가 동물로 표현되기도 한다. 동물의 상징성은 곧 무의식에 대한 표명이다. 즉 의식은 무의식의 정신에 의해서 양육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의식을 양육하는 무의식은 자아다. 자아는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다. 자아는 의식을 싸고 있는 껍질, 몸으로 말하자면 피부에 해당한다. 피부가 없다면 몸은 성장이 불가능하다. 자아는 의식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어머니다. 이기적 본능에 충실한 자아는..

2025. 3. 1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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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우도(十牛圖)와 영웅 신화

2) 십우도는 영웅 신화가 보여주는 잃어버린 모성을 찾고 있는 상像이다 헤르만 헤세는 융 학파에게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개성화 과정을 직접적으로 경험했다고 알려진다. 그런 이유 때문에 헤세의 작품에는 정신구조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겨 있다. 그의 주요 작품들에 나타나는 정신구조에 대한 상징성은 문학을 넘어 심리학 그 자체를 묘사하고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헤세의 작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Narziß und Goldmund)』에서 주인공 골드문트는 잃어버린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골드문트의 어머니는 이교도 출신의 가난하고 야성적이었던 댄서였다. 골드문트의 아버지는 행정과 군사의 대권을 장악하고 민회를 소집할 수 있는 최고의 지위인 집정관이었다. 골드문트의 아버지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는 전혀 어..

2025. 3. 1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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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우도(十牛圖)와 영웅 신화

1) 영웅 신화는 무의식의 드라마다융은 원시심리학과 신화학이 정신의 깊은 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집단무의식의 원형적 재료들은 개별적으로 변이 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정신의 보편적 토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융은 현대인의 꿈이나 환상에서 보이는 상징들이 고대 원시의 신화에서 나타나는 상징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아냈다. 이것은 상징 그 자체가 정신의 내용이라는 말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간의 본질,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상징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영웅 신화는 그리스 ⦁ 로마 ⦁ 중세 ⦁ 동아시아를 비롯해 현재도 원시 종족으로 살고 있는 공동체에서도 모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을 인간 본연의 정신세계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

2025. 3. 1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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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득우 : 소를 잡다

2) 소를 잡는 일(得牛)은 중심에 대한 온전한 집중이다네 번째 그림에는 목동이 도망가려는 소의 고삐를 힘주어서 잡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소는 들소다. 그것도 힘이 가장 세다는 황소다. 그야말로 영웅의 괴력이 아니고서는 소를 잡을 수 없다. 소를 잡는다는 것은 황소보다 더 강한 힘을 가졌을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십우도에서는 이 목우의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 길들이지 않는 소는 들소일 뿐 사람의 소가 아니다. 길들여지지 않는 소는 언제든지 자기 본연의 세계로 도망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연금술에서도 변환의 물질은 가장 잘 달아날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그 물질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밀봉해야만 했다. 변환의 물질은 집중이 조금만 흐려져도 빠져나가버려 작업자를 불행 속으로 빠지게 ..

2025. 3. 12.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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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득우 : 소를 잡다

1) 부처는 왜 자아의 기능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부처는 그 자체로 온전함이라고 말해진다. 그 자체로 온전함에도 불구하고 자아라는 부분정신의 기능을 발현시킨다. 온전한 부처가 왜 자아를 필요로 하였는지 그 이유를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소가 자기(Self)와 자아 둘 다를 상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기와 자아, 즉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은 곧 '의식이 부처'임을 말해준다. 의식이 부처라면 자아는 부처를 지키고 키우는 보모다. 그러므로 의식은 자아라는 기능이 있어야만 성장할 수 있다. 자아는 의식의 중심으로서 의식의 힘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자아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를 중심으로 에너지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기(Self) 혹은 부처가 의식을 강..

2025. 3. 12.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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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견우 : 소를 보다

2) 소는 자아이면서 동시에 부처이다 "자기(Self)는 원시적 상태이고 시공간을 넘어서며, 사람의 마음에 존재해 정신적 전체성으로 향하게 하는 선천적인 잠재성이다."    , 이부영 융이 말하는 자기(Self)는 불교의 불성이다. 불성이 원시적 상태에 있다는 말에서 십우도가 왜 깨달음을 위해서 '소'를 찾으러 간다는 상징을 묘사하는지 그 이유가 밝혀진다. 자기(Self), 곧 불성은 원시성의 에너지이며 원시성의 리비도로서 충동성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성을 임제는 '거친 풀'이라고 하고, 조주는 '차디찬 샘물'이라고 했으며, 조주의 스승인 남전은 '남전참묘아(南泉斬猫兒)'라고 했던 것이다. 조주의 스승은 남전선사는 신성한 법당에 물소를 들여놓았다. 동물의 원시성을 거치지 않고서는 부처를 만날 수 ..

2025. 3. 1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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